시민 지하철 공포 확산

입력 2003-02-20 13:29:21

"언제 또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불안해서 못살겠다".

대구지하철 방화 사건 후 시민들이 대형사고 공포에 빠져 있다.

1995년 대구 상인동 지하철 공사장 사건 기억까지 되살려지면서 공포감이 확고해지고 있는 것.

▲지하철 승객들의 불안=지하철 승객들은 이를 타면서도 매우 불안해 하고 있다.

19일 퇴근길에 만난 김정민(44.회사원.대명동)씨는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을 타지만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불안하다"며, "가족들도 무조건 지하철을 타지 말라고 말린다"고 했다.

19일 오후 2시쯤 송현역에서 진천역까지 지하철을 탄 김진형(27.대구 진천동)씨는 "다른 교통수단이 마땅찮아 어쩔 수 없지만 지하철을 타고 있는 동안에도 누가 무슨 짓을 저지르지나 않나 겁난다"고 했다.

19일 오후 2시쯤 동대구역에서 지하철을 탄 조필수(67.대구 신암동)씨는 "지하철을 타면서 이제는 먼저 탈출구부터 찾게 됐다"며 "불편해도 출구 쪽에 서서 가는 게 오히려 마음 편하다"고 했다.

대구 지하철공사 한 관계자는 "전에는 지하철 안전대책을 묻는 전화가 한 건도 없었으나 사고 후 하루 몇 건씩 전화가 걸려 온다"고 전했다.

▲지하철을 피하는 사람들=방화사건 전까지는 지하철을 탔다는 오종식(38.송현1동)씨는 "처참한 광경을 본 뒤 불안에 떠는 것보다 아예 시내버스를 이용하기로 마음을 바꿨다"고 했다.

19일 오전 8시30분쯤 동대구역 부근에서 만난 장화연(30.대구 신암동)씨는 "평소엔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했지만 이제 겁이 나 시내버스를 이용한다"고 했다.

사고 발생 당일 늦잠을 자는 바람에 화를 면했다는 김희진(26.대구 상인동)씨는 "사고 소식을 듣고는 꼭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느낌"이라며, "이제는 맨홀 뚜껑만 봐도 가슴이 덜컹거린다"고 했다.

박태현(33.대구 신천동)씨는 "지하철역 근처에만 가도 소름이 돋는다"고 했고, 김분조(23.청도군 청도읍)씨는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제일 무서운 말이 '지하철 한번 타 볼래'라는 말"이라며 "대구 지하철이 호환.마마.불법비디오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됐다"고 했다.

지하철 기피증은 당분간 계속되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도 지하철 운영 자체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관계자들은 전망했다.

▲지하공간 전체에 대한 불신=지하철에 대한 시민들의 공포는 상가.유흥업소.목욕탕.숙박업소 등 지하공간 전반에 대한 공포로 확산되고 있다.

지하철뿐 아니라 이들 시설에서도 사고가 날 경우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진 것.

노래방을 즐겨 찾았다는 강신형(33.대구 산격동)씨는 "사고 발생 후 지하노래방을 이용하기가 왠지 불안해졌다"고 했고, 범어동에서 지하 목욕탕을 운영하는 김모(50)씨는 "이용객이 갑자기 줄었다"고 답답해 했다.

▲지하공간 신뢰회복 시급=이정훈(35.대구 만촌동)씨는 "사고가 날 때마다 지하시설의 소방체계를 재점검하고 관련 규정을 손질하겠다고 법석을 떨어 놓고는 원시적인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대구 서부소방서 임동권 진압대장은 "지하공간에서의 대형 참사를 줄이기 위해서는 지하시설물 설치.관리 규정에 대한 전반적인 재점검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희정(33.경주시 감포읍) 소방관은 "지하 대형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용자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며 "사고 때의 대처방법 습득과 이를 지원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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