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공사-사고 기관사 미리 입맞췄나

입력 2003-02-20 13:35:21

이번 지하철 방화 참사에서 대형 인명 피해가 발생한 대구지하철 1080호 전동차의 기관사가 사고 직후부터 경찰 출두 때까지 지하철공사 측과 지속적으로 접촉한 것으로 밝혀져 사전 조율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대구경찰청 수사관 3명이 사건 당일 지하철 건설본부장실로 찾아가 최씨의 신병 인도 방법을 논의하기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1080호 전동차 기관사 최모(39)씨가 사고 당일 현장 부근에서 배회하다 밤 9시쯤 경찰에 자진 출두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지하철공사 관계자는 최씨가 사고 직후부터 11시간 동안 지하철공사 직원과 함께 있거나 연락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사고 후 지하철공사 직원 4명은 최 기관사로부터 연락을 받고 나가 오후 1시쯤 중앙로역의 경상감영공원쪽 출구에서 서로 만났다.

지하철공사 최모 팀장은 "당시 최 기관사가 몹시 불안해 하는 것으로 보이는 데다 휴대전화 배터리마저 소진돼 동행한 다른 직원에게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 연락이 닿는 곳에 함께 가 있도록 조치했다"고 말했다.

최 기관사는 이 지시에 따라 지하철공사 직원 1명과 함께 중앙로역 인근 한 가게에 있다가 중부경찰서로 출두했다는 것.

최모 팀장은 또 이날 저녁 중태에 빠져 동산병원에 입원 중이던 1079호 기관사를 문병갔다가 기관사 최씨가 도망친 것으로 알고 있는 다른 동료들에게 "최씨는 현재 연락이 닿는 곳에 있다"고 말해 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또 이 시간쯤 지하철공사 관계자로부터 "수사관들이 최씨를 찾고 있는데 연락이 가능한가?"라는 전화를 받고 최씨의 소재를 알려 줬다고 했다.

이 연락 후 본부로 향하던 최씨 등은 "최씨를 어디로 보낼지 형사들과 의논 중이니 잠시 기다리라"는 본부측 전화를 받고 한 시간 가량 더 기다린 뒤, "가까운 중부경찰서로 가라"는 지시에 따라 밤 9시쯤 경찰서로 향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대구경찰청 수사과 관계자는 "상부의 지시를 받고 사고 경위를 파악하러 오후 7시쯤 지하철공사를 찾아갔을 뿐 최씨의 소재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최 기관사의 진술 일부가 실제 상황과 일치하지 않고 지하철공사 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술된 것으로 확인돼, 최씨가 사전에 공사측으로부터 말 맞추기를 지시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최씨는 경찰에서 "사령실로부터 전도역(앞의 역)에 사고가 났으니 주의운전하라는 무선연락을 받았다"고 했으나, 당시 사령실 관계자들은 불이 났다는 휴대전화 연락이 최씨로부터 온 뒤에는 일체의 유무선 통신이 불능 상태였다고 했다.

이 때문에 실종자 가족들은 19일 오후 시민회관 분향소를 찾은 백승홍 국회의원, 대구시 관계자 등에게 사건축소 의혹을 파헤쳐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지하철공사 윤진태 사장은 "사고 당일 최 기관사가 전동차에서 빠져 나왔다는 사실만 알 뿐 현장에 쫓아다니느라 추가로 보고 받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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