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중심 서석지 3대 민가 정원 꼽혀

입력 2003-02-20 10:12:20

서석지(瑞石池)를 빼놓고는 연당마을을 이야기할 수 없을만큼 이 못은 마을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서석지는 '상서로운 돌의 연못'이라는 뜻인데 정영방 선생이 성균관 진사 벼슬을 끝으로 학문정진을 위해 산수가 뛰어난 연당마을에서 일생을 보낼 뜻을 굳히면서 만들어 졌다.

서석지는 '자연과 인간 합일사상'을 토대로 만든 조선시대 대표적 유적으로 우리나라 조경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고산 윤선도가 전남 완도에 만든 '부용원'및 전남 담양의 '소쇄원'과 더불어 3대 민가 정원으로 손꼽힌다.

서석지는 연못을 중심으로 경정(敬亭)과 주일재(主一齋) 그리고 남문과 담장이 주위를 아늑하게 감싸며, 주위 산천도 맑고 수려하다.

연못 규모는 남북간이 11.2m, 동서간 13.4m, 깊이1.3m~ 1.7m 사이의 요(凹)자 형인데 이같은 형태와 규모는 정원과 건축물의 곡선미 등을 따져볼때 균형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는것. 특히 연못 물 속에 가라앉거나 돌출한 돌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고 못속의 석단에는 매난국죽(梅蘭菊竹)을 심은 사우단(四友壇)이 있다.

사우단 뒷편의 주일재는 운루헌(雲樓軒)이란 현판이 걸려있고, 4칸 대청과 2칸 온돌방이 있는 경정은 14평 규모로 서석지를 내려다 보고 있다.

연못 속의 서석은 모두 19종 90여개에 이르는데 수륜석 어상석 관란석 화예석 봉운석 분수석 선유석 등으로 모두 상징적인 이름이 붙여져 있다.

연못 옆에는 400년생 은행나무가 지금도 그대로 서있다.

정원은 내원(內苑)과 외원(外苑)으로 구분된다.

내원은 사색과 독서 등 사생활을 위한 공간으로서 인공적으로 꾸미면서도 주위 자연과 조화를 이뤘고 외원은 병풍바위 처리로 수려한 선경을 이루고 있다.

내원.외원간 공간비율은 1대3으로 공간미의 아름다움이 강조돼 있다.

화려한 꽃보다는 청초한 식물을 가꾸면서 외부와의 시계가 차단되지 않도록 배려된 것도 특징. 서석지는 '경정잡영(敬亭雜永)'이라는 노래집을 통해 정원의 각 부분을 그림처럼 묘사하는 동시에 그속에 운(韻)을 넣어 생동감을 표현했다.

경정음(敬亭吟) 중 한 시구를 보면 위화계유성(謂畵溪有聲)이라 했는데 이는 '그림에서 시냇물 소리가 들린다'는 뜻으로 그림속에 소리, 즉 노래를 넣었음을 보여준다.

옛 선인들은 정원을 단순히 눈으로만 감상했던 것이 아니라 좀 더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했음을 엿볼수 있어 한층 멋스러움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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