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가정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대안가정을

입력 2003-02-19 12:23:18

한 나라의 장래는 자라나는 아이들의 손에 달려 있다. 아이들은 우리의 내일이며 희망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가정이라는 사랑의 보금자리에서 작은 사회를 경험하고 삶의 크고 작은 이치를 배워 간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부모를 잃어버리거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친부모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런 아동들에 대한 일반인이 알고 있는 우리사회의 대응방식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상태가 최악이 아닌 경우에는 그냥 방치한다.

둘째, 고아원 같은 아동보호시설에 수용시킨다.

셋째, 가능하면 해외로 입양보낸다.

넷째, 조금 큰 아이들은 소년소녀가장으로 지정해서 후원을 받게 한다.

이것은 문명국가로서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 아직도 고아원이 있고, 여기에 아동을 100여명씩 집단으로 수용하는 것은 과장하면 아동학대에 해당될 수 있다.

소년소녀가장이라는 말 자체가 우리사회가 아동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소년소녀가 어떻게 가장이 될 수 있는가? 아이들은 힘이 없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줄도 모르고 데모도 할 줄 모른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힘없고 소외된 아이들을 너무 함부로 다루고 있지는 않는가?

물론 우리나라 아동복지를 총괄하고 있는 아동복지법 제3조에 보면'아동은 완전하고 조화로운 인격발달을 위하여 안정된 가정환경에서 행복하게 자라나야 한다'고 되어 있고, 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한민국 어린이헌장 제1항에는 '어린이는 건전하게 태어나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속에서 자라야하며, 가정이 없는 어린이에게는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알맞은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 말들이 공허한 말의 헛바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조문, 규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방법은 친가정을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적절한 대안가정을 제공하는 일이다. 첫째는 입양, 둘째는 가정위탁, 셋째는 소규모 그룹홈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부모가 없는 아이는 입양을, 보호자는 있지만 일정기간 아이를 보살필 수 없는 경우에는 가정위탁을, 장기 치료가 필요한 특수아동은 소규모 그룹홈에서 보살필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은 정부의 책임을 따지는 식으로 해결될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와 시민이 함께 이루어내야 될 일이다. 이 일은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을 돕는 것이다. 우선 자신의 아이들을 올바른 사회인으로 키우는 데 유용하며,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이 사회를 보다 아름답고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 극심한 경쟁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분위기에 편승해서 자신의 아이들을 이기적이고 편협한 아이로 키우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자신의 아이가 어떻게 해서든 남보다 앞서야 된다는 논리에 집착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모두들 '남들이 모두 그러니까 나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혈연가족이라는 협소한 틀을 뛰어 넘어 사회공동체적인 관점에서 멀리 보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너와 내가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용기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 내 가정을 열어 남의 아이를 받아들이는 선택은 어떤 두려움을 동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두려움을 극복하고 가치 있는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자만이 우리사회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수형〈(사)대안가정본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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