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방화당시 상황 재구성

입력 2003-02-18 21:19:23

18일 오전 9시50분. 대구지하철 1호선 교대역을 떠난 안심행 1017호 전동차는 명덕역을 향하고 있었다.

출근 시간대를 지났기 때문에 전동차 안은 한산했다. 객차 안에 서있던 사람은 손을 꼽을 정도. 대다수 승객들은 꽉 찬 전동차가 아니어서인지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동차가 명덕역에 도착했다. 몇 명의 승객이 전동차에 올랐다. 회사원 한상우(42)씨도 이 역 탑승자 중의 하나.

한씨는 세번째 객차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를 잡자마자 뭔가 불안감을 느꼈다는 한씨. 같은 객차안에 타고 있던 50대 남자가 자꾸만 '거슬리는 짓'을 했던 것이다.

"라이터를 자꾸 켜 댔어요. 맞은편에 계시던 할아버지가 호통을 쳤어요. 하지 말라구요" 한씨는 장난이려니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방심이었다. 오전 9시54분쯤 전동차가 중앙로역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 한씨도 열린 문을 통해 나섰다.

한씨는 뭔가 뜨끔한 것을 느꼈다. 이상하다 싶었던 것이다. 순간 돌아보자 라이터 켜던 남자가 우유병으로 보이는 플라스틱 용기를 자신의 가방에서 꺼내들고 뭔가 주저하고 있었다.

"왜 저러나" 한씨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이 남자는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플라스틱 용기에 있던 인화성 물질을 쏟아붇고 불을 붙인 것.

이 남자의 몸에도 불이 붙었다. 승객들은 이 남자를 끌어내고 불을 껐다. 그러나 객차안의 불은 좌석밑으로 확 번지면서 급속도로 확산됐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승객들은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불구경을 하는 사람까지 있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불과 1, 2분 사이였다. 뒤쪽 승객들은 불이 난 사실도 몰랐다. 방송조차 나오지 않은 것이다.

허둥지둥 대피하는 발길이 이어졌다. 그러나 대피로는 멀고도 길었다. 수십개의 계단을 오르다 지쳐 쓰러지는 승객들이 곳곳에서 속출했다.

불이 난 지 2분여 뒤 반대쪽에서 오던 대곡행 전동차까지 중앙로 역에 들어왔다. 이 전동차에도 화마가 덮쳤다. 출입문조차 열리지 않은 곳이 많았다. 답답한 승객들이 "문이 열리지 않는다"며 결과적으로 마지막 인사가 된 전화를 걸었다. 잠시 뒤 불은 양방향 열차 12량을 모두 덮치고 말았고 200여명의 사상자를 내는 대참사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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