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노트-'맹신'이 부른 참극

입력 2003-02-17 13:17:08

"이제 내 눈에서 눈물이 나와요. 착한 아들을 내 손으로 죽이다니... . 왜 나를 말리지 않았습니까".

지난 15일 오후 1시쯤 대구 서부경찰서 형사계 사무실. 귀신을 쫓아낸다며 작은 아들과 그 고종사촌 형을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붙잡혀 온 어머니 이모(55)씨는 그제서야 참회의 통곡을 터뜨렸다.

살인자에서 애태우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남편 이모(62)씨는 "나도 그때 무엇에 씌었던 것 같다"고 때늦게 가슴을 쳤다.

작은 아들을 살리려 하니 눈 감고 참선하고 있으라는 아내의 말을 그대로 따랐던 게 한탄스럽다는 것. "굿만 하고 그냥 집으로 갔더라면 아무 일 없었을텐데, 당신이 무슨 보살이라고..." 이씨는 아내를 원망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범행에 가담했던 큰 아들은 "그때는 동생과 고종 형이 마귀로 보였다"고 했다.

"아버지마저 살해하려다 정신을 차리고서야 (엄마의) 주술에서 풀린 기분이었다"는 그는 "엄마한테 속은 걸 이제야 알겠다"고 했다.

숨진 작은 아들은 주위로부터 총명하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중국 유학까지 다녀왔고, 그를 살해한 큰 아들은 고교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랭귀지스쿨에 다니기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숨진 고종 형 안씨는 운전을 도맡아 해 주는 등 이들을 돕던 가족같은 사이.

그러나 이들은 교주에 가까운 어머니에 대한 맹신에 빠져 외부 출입을 거의 않은채 비정상적인 생활을 해 왔으며, 그 맹신은 상상을 초월하는 절대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수사를 맡은 경찰관들조차 "신기에 빠진 일가족의 집단적 광기때문에 빚어진 상상 못할 사건"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최병고(사회1부)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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