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원 특보가 밝힌 對北송금 전모

입력 2003-02-14 11:59:48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보는 14일 오전 현대상선의 대북송금 사건에 관한 보충설명을 통해 송금 합의의 배경과 규모, 경위 등에 관해 밝혔다.

다음은 임 특보가 밝힌 대북송금 사건의 진상과 경위.

◇대북송금 배경 = 현대그룹 창업자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생전에 대북진출사업에 남다른 열의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 정주영 회장은 89년1월 방북, 대규모 경협사업을 추진코자 했으나 남북관계 상황이 여의치 못해 진전을 보지 못했다.

98년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회장은 대북사업을 본격 추진하게 되었다. 정주영 회장은 98년6월과 10월 두차례에 걸쳐 소떼 1천1마리를 몰고 방북했고, 2차 소떼 방북시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을 통해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한 30년간 독점권을 확보했다.

이를 바탕으로 현대는 그 다음해인 99년부터 북한내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건설 및 기간산업 투자에 참여하기 위한 협의를 진행했다. 그렇게해 합의된 사안이 바로 7대 경협사업이다.

현대측은 이 사업들에 대해 30년간 독점권을 확보하고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키로 했다. 현대는 5월초에 북측과 7대 사업독점권에 대해 잠정 합의했고, 6월과 7월 정주영 회장 등 현대측 인사들이 북측 인사들과 수차례 협의해 8월초에 정식 합의서를 채택하게 된 것이다.

당시 이런 대규모 협력사업들을 독점하기 위한 대가로 5억달러를 지불키로 했다는 보고를 받은 바 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민간 기업의 자체적인 판단에 따른상업적 거래였다.

◇정부개입 여부=국정원장 재직시인 2000년 6월5일경 현대측에서 급히 환전편의 제공을 요청해왔다는 보고를 받고, 관련부서에 환전편의의 제공이 가능한지 검토해 보라는 지시를 한 바 있다.

국정원은 외환은행에서 환전에 필요한 절차상의 편의를 제공했고, 6월9일 2억달러가 송금되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상부에 보고된 바 없음을 말씀 드린다.

NSC 상임위는 다른 대북사업들과 함께 현대의 대북경협사업 추진현황을 계속 검토해왔고, 남북경제공동체 건설 차원에서 이를 적극 지원해 주기로 한 바 있다. 이 사업들이 실현될 경우 경제적 이익과 함께 한반도의 긴장완화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환전편의 제공을 검토지시 한 것으로 기억한다.

어찌됐건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저에게 큰 책임이 있다.

◇남북정상회담과 현대 대북사업과의 관련여부=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98년부터 99년까지는 남북 당국간에는 이렇다할 접촉창구가 없는 상황이었다. 현대를 비롯한 일부 민간기업만이 대북경제협력차원에서 북한과 접촉과 대화가 유지되고 있을 때였다.

현대는 북한측과 대규모 협력사업이 협의되고 독점권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이를 확실히 보장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현대는 북한측에 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했고 북한도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전해들었다.

북한 역시 90년대에 연속 마이너스 성장으로 극심한 경제난에 처해있는 상황에서, 현대와 협의하고 있었던 경협사업들이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바 이를 위해서는 남측 당국의 보장과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인식해 정상회담에 호응해 온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은 국민의 정부 출범 초기부터 '남북정상회담 용의'를 표명해왔으며 2000년 3월9일에는 '베를린 선언'을 통해 "북한이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준비가 돼 있으며 북한의 도로.항만.철도.전력.통신 등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지원" 의사도 밝힌 바 있다.

현대측의 대북사업과 대통령의 의지표명에 힘입어 2000년 3월초부터 4월초까지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과 북측의 송호경 아태부위원장이 만나 정상회담 개최 문제를 협의했고 4월 8일 합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당시 현대의 정몽헌 회장과 이익치 회장은, 양측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현장에서 양측을 소개한 바 있으나, 정상회담을 위한 협상과정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현대측의 대북사업 진전이 북한측의 태도변화에 영향을 미쳤고, 남북 정상회담 성사에도 기여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남북정상회담 대가 여부 = 우리 정부는 어느 누구도, 북한측과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한 대가제공 문제를 협의한 바 없다.

현대의 대북송금이 정상회담의 대가라는 주장이 있지만 현대측에 따르면, 경협 사업 독점권에 대한 대가이며, 이와 관련한 협상도, 정상회담이 논의되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남북정상회담 개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실제 현대와 북한측의 경협사업 합의에는 현대가 주도하여 국내외 기업들의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업을 추진하며, 토지를 북측이 무상으로 제공하는 등 각종 혜택을 보장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상회담 직전에 2억달러가 송금된 사실을 두고, 의혹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으나, 송금시기 약속은 현대와 북측간에 이뤄진 것이다.

시기가 그렇게 결정된 것과 관련해 저는 현대와 북한측 모두 정상회담 이전에, 독점권과 그 대가를 확실히 확보하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부에서 정상회담 대가제공의 근거로 정상회담 일정변경을 인용하고 있지만 사실관계가 전혀 다르다.

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 북한측은 우리 언론이 방북경로와 일정 등을 상세히 보도하자 두 정상의 경호.안전문제와 관련 불만을 표시했고 남북간에는 당초 6월 12일로 예정된 정상회담 일정을 놓고 하루 앞당기거나 하루 늦추자는 논의가 있었다.

그런 가운데 북한측은 6월 10일 '기술상의 문제'로 일정을 하루 늦추자고 제의해 왔고 우리가 이를 수락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씀드리면 일정 연기 조치는 6월 10일 저녁에 제기됐고, 현대의 2억불 대북송금은 그 전날인 6월 9일 이미 이뤄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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