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입학철. 초중고에서 대학까지 신입생들은 새 생활에 대한 기대로 설렌다.
하지만 우리 주변엔 교복도 없이 입학식에 가야 하는 청소년들이 적잖다.
가난한 가정의 학생들에게 학비는 지원되지만 교복·학용품은 스스로 마련해야 하기 때문. 그래서 수십만원씩 되는 교복값이 이들에게는 천근 만근의 부담이다.
◇엄마, 교복은요?
다음 달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미경이(16·가명·여·대구 달서구)는 입학하는 날부터 선생님으로부터 야단맞지 않을까 고민 중이다.
네번이나 교통사고를 당해 노동력을 상실한 아버지, 천식으로 숨이 가빠 파출부 일도 제대로 못해내는 어머니. 여동생 둘…. 월 56만원씩 나오는 국가 보조금으로는 미경이네 5식구 가계부에 20만원이나 하는 교복값 올릴 자리가 없다.
"공부 많이 해서 우리 집을 일으키는 꿈을 꿉니다.
교복같은 것 안 입고 학교 다니면 안될까요? 공부는 더 잘 할 자신이 있습니다". 미경이에겐 교복보다도 근육이 굳어가는 희귀병을 앓는 동생 미숙이(15·가명)가 더 큰 걱정거리이다.
남편 없이 혼자 생계를 꾸리는 최미옥(45·가명·여·대구 달서구)씨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아들 민수(17·가명), 중학교에 입학하는 딸 민지(14·여)를 보면 애가 탄다.
한 달 37만원의 국가 보조금으로는 40만원이 넘을 두 아이 교복을 맞춰줄 재간이 없기 때문. 자신은 협심증·고혈압으로 전에 하던 전단지 돌리기조차 그만둔 상태이다.
"관리비 줄 돈을 빼고 나면 겨우 22만원 남습니다.
쌀까지 아껴 먹는 형편이라 아무리 줄여도 40만원 모을 길이 없습니다". 최씨는 아이들 교복 사는 꿈을 밤마다 꾼다고 했다.
053)636-5567(대구 본동복지관).
◇월성복지관의 시도
그러나 어려운 이웃들에게 교복값이 얼마나 부담되는지 주목한 사람은 1996년까지만 해도 대구에는 없었다.
대구에서 처음으로 어려운 이웃에게 교복을 전달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한 월성복지관에 이를 깨우쳐 준 사건이 일어난 것이 바로 그 해였다.
2월에 할머니와 사는 초교 6년생 여자 어린이 두 명의 사연이 월성복지관에 전해진 것. 당시 교복값은 15만원 정도. 고작 10여만원으로 살아가는 할머니에겐 천금같은 액수였다.
뒤늦게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이 복지관 복지사들이 관할 지역 상황 파악에 나섰다.
그 결과 집계된 것은 중학교 입학 예정자만도 무려 20여명. 복지사들은 그 즉시 사랑의 교복 후원사업을 시작했고 복지사들의 호소에 많은 이웃들이 나섰다.
월성주공3단지 부녀회가 팔을 걷어붙였으며, 월성보성2차 부녀회, 상인보성은하 부녀회, 월성 경로당 수복정 등이 첫해부터 올해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후원하고 있다.
1998년부터 매년 50만∼100여만원씩 보내주고 있는 성서공단 한 업체 사장은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고 돈만 받아달라"고 오히려 부탁할 정도.
이렇게 해서 첫해 29명이 교복을 받을 수 있었고 그 후에도 매년 20∼30명이 교복을 지원받았다.
지난 해까지 지원자는 모두 195명. 첫 해 교복을 받았던 동식이는 이미 대학생으로 성장, 지금은 군 복무 중이면서도 휴가만 나오면 복지관 밑반찬 배달사업을 도우고 있다.
1998년 교복을 받았던 소녀가장 지연이(17·가명)는 방학 때마다 빵집 등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열심히 공부,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할 꿈을 키우고 있다.
월성복지관 이승희 팀장은 "올해도 60명의 청소년들에게 교복이 필요한 것으로 집계됐다"며, "후원이 넉넉잖아 모든 청소년들에게 교복이 돌아가게 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했다.
◇어려운 이웃에 교복 한 벌을
월성복지관이 앞장 선 후 대구시내 다른 복지관들도 교복 후원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빠듯한 복지관 자체 재원으로 도울 수 있는 숫자는 기껏해야 2, 3명. 2월은 특히 후원이 많잖은 달이어서 복지관 사람들은 더 마음을 졸이고 있다.
대구에서만 두달 동안 10억여원을 걷는 공동모금회의 집중 모금이 지난 달 말 끝난 참이기 때문.
"헌 교복을 구해 주면 안되느냐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가뜩이나 어려운 아이들이 교복까지 헌 것 입고 학교 간다면 다른 아이들이 어떻게 보겠습니까? 가난한 아이들을 놀림과 차별의 대상으로 삼게 해서는 안됩니다.
어른들 기준으로 보지 마시고 어린이·청소년의 마음 높이에서 봐 주십시오. 이 아이들을 반듯하게 키워내는 것은 우리 사회의 의무입니다".
한 복지관 사회복지사는 입학철을 앞둔 2월이면 해마다 특별후원이 꼭 필요하다며 가까운 동네 복지관에 전화를 걸어 줄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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