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아워스'(The Hours.21일 개봉예정)의 제목은 '세월'을 뜻한다.
감독 스티븐 달드리는 위즈강 수초 속으로 빨려 들어간 버지니아 울프를 깨워 80년 동안 이어지는 여인의 고통스런 '세월'을 영화에 담았다.
'그 고통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구체적인 제시는 없지만, 관객은 질식할 것 같은 일상의 반복을 느낀다.
사뭇 지적이며 우회적이다.
그래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무슨 대단한 영화인 체 한다"며 2002년 최악의 영화에 꼽았다.
그러나 타임의 지적은 지나친 편견으로 보인다.
이미지는 설명이 아니라 표상이고, 영화는 드라마이기 앞서 느낌이기 때문이다.
1923년 영국 리치몬드의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 1951년 미국 LA의 로라(줄리안 무어), 2001년 뉴욕의 클래리사(메릴 스트립).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 살고 있는 전혀 다른 세 여인이 주인공이다.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 중인 울프는 태생적인 염세성에 고통스러워하고, '댈러웨이 부인'에 매료된 평범한 주부 로라는 벗어날 수 없는 일상에 자살을 시도한다.
'댈러웨이 부인'이란 별명의 출판 편집자 클래리사는 존재 가치를 잃고 방황한다.
소설 '댈러웨이 부인'(1925년)이 연결고리지만, 세 여인은 모두 1941년 자살한 울프의 극한적 고통에 얽매여 있다.
'댈러웨이 부인'에 나오는 '죽을 수 있을까'(It is possible to die)가 반복되고, 자식을 버리고, 영혼은 상처받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자살을 시도하고, 다시 깨어나 삶을 추스리고, 죽음을 애도한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처절한 고통 속에 살다간 울프의 그림자로 인해 입에서 단내가 나올 지경이다.
영화는 위즈강에 투신하는 울프로 시작해, 울프로 끝을 낸다.
돌을 주어 호주머니에 넣고, 서서히 강물에 침잠해 가는 울프의 모습이 비장미 넘친다.
특히 수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천재 시인을 물 속에서 잡은 장면은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처연하다.
대사 없이 피아노 선율 속에 보여지는 첫 몇 분간의 교차 편집은 서로 다른 공간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조합해내고 있다. 똑 같이 눈을 뜨고, 머리를 손질하고, 꽃을 산다.
그들의 하루가 시간(hour)을 넘어 세월(hours)이 되는 것이다.
연극연출가 출신의 스티븐 달드리는 발레에 미친 소년 이야기인 '빌리 엘리어트'의 감독이다.
친절한 설명조의 '빌리 엘리어트'와 달리 '디 아워스'는 절제된 감정과 정제된 대사에 힘을 쏟는다.
절제됐다지만 이미지 자체는 상당히 풍부하다.
고통, 슬픔, 자괴심, 한계, 그리고 자살로 이어지는 울프의 느낌들이 에피소드에 잘 녹아 있다.
시나리오도 정교하다.
울프는 양성애자로 알려져 있다.
로라와 키티의 키스 장면, 클래리스의 양성애를 통해 울프와 동체임을 보여주는 대목은 영화의 치밀성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디 아워스'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 데이비드 헤어의 뛰어난 각색, 피터 보일의 편집과 스티븐 달드리의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뛰어난 것은 세 여주인공의 연기다.
셋의 연기 모두 호연이지만, 줄리안 무어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욕실에서 눈물을 삼키며 침대에 누운 남편과 대화하는 장면은 일품이다.
그러나 골든 글로브는 니콜 키드먼에게 여우주연상을 주었다.
그녀는 매부리코를 붙여 완벽하게 버지니아 울프의 광기를 재연했다.
에이즈환자로 나온 애드 해리스도 기억에 남는다.
"여성의 고통을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그려낸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사설이 장황한 일반적인 페미니즘 영화 보다 훨씬 지적이고 진지하다.
사족 하나. '디 아워스'가 하품이 나올 정도로 지루하다면, 당신은 킬링 타임용 영화에 지나치게 많이 노출됐거나, 세상에 대한 시선이 궁색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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