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뉴라운드 협상과 관련 '쌀수입 관세화' 수용 의사를 포함한 농산물시장개방 제안서를 제출, 협상 결과에 따라 시장개방이 더욱 확대될 경우 향후 한국 농업시장에 일대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10일 농림부는 WTO의 도하개발아젠다(DDA) 농업협상과 관련, 오는 2005년부터 6년간 선진국의 경우 △농산물 평균 수입관세 36%(최소 15%) △농업보조금 55%를 각각 감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농산물 시장개방 제안서를 WTO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또 개발도상국에 대해서는 10년에 걸쳐 선진국의 3분의 2수준에서 관세 및 보조금을 감축할 것을 제안했다. 정부는 그러나 식량 안보 관점에서 주요 핵심 농산물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최소 관세 감축률을 15%(개도국 10%) 대신 10%(6.7%)로, 수출 실적이 없거나 미미한 품목의 보조금 감축률도 55% 대신 20%로 완화해 적용하자는 의견을 내놨다.
이번 협상은 2004년 재협상키로 전제가 된 쌀 개방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으로 쌀이 관세화 품목으로 전환될 경우에도 핵심농산물로 인정받아 관세화율을 최소화한다는 방안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농림부 이명수 국제농업국장은 "한국.일본등 농산물수입국인 비교역적관심국가(NTC)그룹의 이해에 맞춰 핵심 농산물에 대해 보다 낮은 관세를 적용토록 제안했다"며 "주요 농산물을 핵심 품목으로 인정받는 문제와 개도국 지위 유지가 협상의 관건"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가 DDA농업협상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관세 및 보조금 감축방식과 감축폭에 대한 구체화된 제안서를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WTO가 이 방안을 그대로 채택할 경우 2004년 기준 62.2%인 우리나라의 농산물 평균 관세율은 2011년에는 39.8%로 낮아지게 된다. 또 올해 1조4천억원 수준인 추곡수매예산은 2010년까지 2천억~4천억원 규모로 감축이 예상된다.
◈ 국내 농업에 'UR 이상의 타격'
우리 농업의 사활이 걸린 WTO의 DDA 농업협상은 2004년 쌀 재협상의 방향타가 되기도 해 일찍부터 관심이 집중됐다. 정부가 10일 발표한 농산물협상 제안서는 쌀 '관세화 수입'을 기정사실화한 가운데 본격협상이 전개될 WTO 뉴라운드협상에서 우리의 입장을 최대한 관철시키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일단 풀이된다.
농산물시장 추가 개방과 관련, 우리와 같은 수입국이면서 WTO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일본 등과 공동보조를 취하면서 나름대로 실리를 취하겠다는게 정부의 입장이다.
◇배경
미국과 호주등 케언즈그룹(농산물 수출국 모임) 주요 농산물 수출국들뿐 아니라 우리와 입장을 같이 하는 유럽연합(EU)과 토착농업 보호를 위해 농산물을 일반공산품 교역과는 달리 취급해야 한다는 일본 등 NTC(비교역적 관심)그룹 국가들도 이미 구체적 개방안을 제시한 상태이다.
여기서 한국만 원칙적 입장만을 고수한 채 시장개방 스케줄을 내놓지 않다가는 자칫 협상에서 우리 입장을 전혀 반영시키지 못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현재 최소시장 접근물량(MMA)으로 수입되고 있는 쌀의 '관세화 수입으로의 정책전환'. 농림부 관계자는 "오는 13일께 제네바에서 열리는 WTO농업위원회에서 관세 및 보조금 감축에 대한 세부원칙을 담은 DDA농업협상 1차 초안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협상의 분수령이 될 이 초안에 우리의 입장을 반영하고 미국 등 수출국들을 견제하기 위해 EU안을 기초로 한 개방안을 내놓게 됐다"고 말했다.
◇전망
지난해 3월부터 기술적 논의를 시작한 DDA농업협상은 대폭적인 관세 및 보조금감축을 주장하는 농산물 수출국들과 UR협상방식에 의한 점진적이고 신축적인 개방을 요구하는 수입국들이 양보없는 접전으로 전개됐다.
협상의 양대축 중 하나인 미국은 협상초기부터 모든 농산물의 수입관세가 25%를 넘지 않도록 관세상한선을 정하고, 보조금도 5년 동안 1996~98년 평균 농업총생산액의 5% 수준으로 낮추자는 충격적 방안을 제시하며 농산물 수입국들을 압박해 왔다.
이에 EU는 94년 타결된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때와 같이 각국의 농업여건을 고려해 농산물 관세를 36% 감축하되 품목별 최소 감축률은 15%로 하고 농업보조금은 55%감축, 수출보조금은 45% 감축할 것을 제시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WTO농업위원회는 오는 13일께 농산물 관세와 보조금 감축에 대한 세부원칙을 담은 1차 협상초안을 내놓을 예정이지만, 우리 제안서가 DDA농업협상에서 얼마나 반영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DDA 농업협상은 오는 3월말까지 관세와 보조금 감축 등의 세부원칙(Modality)을 확정하기로 되어 있으며, 금주 중 의장초안이 배포되면 본격적인 절충을 시도하는 국면으로 접어들 전망이다.
◇국내 농업에 미치는 파장
국내농업의 특수상황을 고려하긴 했지만 우리 개방안 역시 '관세 및 보조금의 실질적 감축'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는 DDA농업협상의 기본방향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대로 채택된다고 해도 국내 농업에 미칠 파장은 만만찮을 전망이다.
결과에 따라 UR 협상 이상으로 국내 농업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관세장벽이 낮아져 외국의 싼 농산물이 물밀듯 들어오면 가격경쟁력을 상실한 우리 농산물이 고사위기에 처할 수도 있는 것이다.
관세와 보조금이 감축이 특히 높은 관세로 보호받고 있는 품목과 보조금 혜택을 많이 받고 있는 쌀 등의 품목에 직격탄으로 날아와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 현재 200% 이상의 고율관세가 부과되는 참깨(665%).보리(342%).마늘(380%).옥수수(346%).감자(321%).고추(285%) 등 100여개 품목의 경우 외국산과의 가격경쟁에서 밀리면서 엄청난 피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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