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묵 사아~려'.
지난 60, 70년대 긴 겨울 밤 칼바람 소리와 함께 간간이 골목길을 울리던 묵 장사치 특유의 목청이 귀에 아련하다.
아랫목에 발을 찔러넣고 추위를 녹이던 온 가족은 메밀묵 소리에 군침만 돌뿐 배고픔은 여전했던 시절, 어쩌다 메밀묵을 먹는날이면 숫가락 소리가 온 방안을 울렸다.
경북 영양읍 서부리 시장통. 이곳에서 30년이 넘게 '이호식당' 간판을 걸고 메밀묵을 만들어온 김상석(84) 권원화(69) 부부는 고향 떠난지 몇 십년 된 사람들에게 메밀묵에 얽힌 추억은 좀체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마디 했다.
노부부는 "이번 설에 대구 서울 부산 등 대도시와 충남 보령에서도 메밀묵 주문이 들어와 꼬박 사흘을 뜬눈으로 새우며 묵을 만들었다"며 이제는 메밀묵 만들기도 벅차다는 표정이다.
70년대 초 처음 묵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는 손님이라곤 시장사람들뿐이었다.
하지만 입소문을 타고 퍼진 영양 메밀묵이 이제는 전국으로 알려져 전화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손님도 처음엔 고향사람이 대부분이었으나 지금은 외지인들도 부쩍 늘었다고.
김 옹은 "해마다 묵장사를 걷어 치우겠다고 속으로 다짐하기도 했지만 밀려드는 주문을 외면하지 못해 이 일을 계속한다"며 웃었다.
"예전에 겨울철이면 농촌 집집마다 메밀묵을 해 먹곤 했는데 지금은 만들기 힘들어 아무도 직접 해먹지 않는 것 같다"고 권 할머니가 옆에서 거들었다.
권할머니는 "메밀묵은 까불기-찧기-거르기-불때기-휘젓기-식히기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되는데 맛은 오랜 경험에서 우러 나온다"고 했다.
하루 2차례씩 묵을 쑬 때면 김 옹이 팔을 걷어부친다.
할머니가 힘들까봐 휘젓기 작업은 꼭 도맡아 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엔 많이 태웠어"라며 김 옹은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들 부부는 이제까지 한번도 메밀을 시장에서 사지 않았다.
인근 농민들이 직접 가져다 주는 영양 메밀만을 고집하고 있다.
권 할머니는"6남매 모두 공부 끝내고 출가해 서울살이하는데 아이들 자랄 때는 공납금 줄 돈이 모자라 밤 늦도록 묵판을 머리에 이고 이동네 저동네 팔러 다녔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어려운 시절 큰 힘이 되었던 메밀묵에 보답한다는 심정으로 힘 닿는데 까지 정성을 다해 묵을 빚겠다며 바쁘게 손을 놀리는 노부부의 뒷모습에 지난 시절 힘들었던 삶의 더께가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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