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대박꿈' 열풍이 두렵다

입력 2003-02-09 12:54:15

'로또 현상'은 우리 사회에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나. 이번주말 대박 로또가 끝나면 우리사회는 어떤 변모를 경험하는 셈일까?

국민 4명중 1명꼴로 로또복권을 사는 로또 광풍을 두고 전문가들의 진단은 대체적으로 '일시적 사회 병리현상'이라지만 그 골은 생각보다 깊다는 게 일반적인 우려다.

따라서 8일 밤 로또복권 추첨이 있고 난 이후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최고 수백만원을 털어 넣어 복권을 산 사람들은 돈을 날린 허탈감에 잠 못 이룰 게고, 1만~2만원어치를 샀다해도 1주일 내내 꿈에 부풀었던 서민들은 기대를 잃어버린 허망감에 맥빠진 일과를 이어가야 할 게 뻔하다.

'대박로또'가 상징하는 한탕주의를 하루 빨리 극복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모으는 일이 이제 우리 사회의 과제다.

◇예견되는 후유증 = 대구의 자영업자 서재모(42·가명)씨는 지난 5일 자재 구입비로 모아둔 100만원을 털어 로또복권을 샀다.

최근 경기가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매출이 떨어져 고민하던중 로또 유혹에 휩쓸린 것.

서씨는 "지난 4일 친구들 모임에 갔다가 모두 지갑에 로또 영수증을 넣어 다니는 것을 보고 큰 자극을 받았다.

요즘은 자금이 딸려 100만원도 큰 돈인데 솔직히 '꽝'이면 어쩌나 걱정이다"며 확률 제로게임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도 않는 눈치였다.

한달 평균 200만원의 월급을 받는 경북 구미의 직장인 이동해(39·가명)씨도 지난 3일 한달 용돈 35만원을 몽땅 털어 로또복권을 샀다.

이씨는 여태 복권을 사 본 적이 한번도 없지만 지난달 말 이후 회사원들 대다수가 로또복권을 사자 결국 베팅을 하고 말았다.

이씨는 "용돈이 없어지면 이 달 한달은 구내식당에서만 밥을 먹고, 술도 안 먹으면 그만이지만 만약 '꽝'이 되면 다음주부터는 무슨 희망을 갖고 살아갈지 고민"이라고 했다.

로또복권사업 운영자인 국민은행 한 관계자는 "이번 주에는 1인당 100만원 어치는 물론이고 200만원 어치를 사가는 고액 구입자가 많이 나타났다"며 "한명이 10만원 넘게 살 수 없다는 규정이 무색해진지 오래"라고 말했다.

◇왜 이럴까 = 전문가들은 '일' 밖에는 몰두할 것이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로또를 계기로 다시 '사회적 전염병'에 빠져들었다고 풀이한다.

1천만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로또를 샀고, 너나 할 것 없이 이번 주말 밤을 기대하고 있다.

복권 추첨 이후에는 상당 기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얘기.

최광선 교수(경북대 심리학과)는 "자살사이트가 인터넷상에 난무하면서 이 사회에 허무주의를 퍼뜨리고 결국 젊은이들을 연쇄자살로 몰아갔던 것처럼 로또도 사회적 전염병의 한 맥락으로 본다"고 했다.

최 교수는 "많은 돈을 투자해 복권을 산 사람은 만회 심리에 빠져들게 될 것"이라며 "로또로 인해 다시 불거진 사행심리와 배금주의가 기성세대의 이성마저 무너뜨리고 마침내는 청소년들에게까지 한탕주의를 퍼뜨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남은 과제는 = 반면 이같은 열풍을 긍정적 에너지로 결집할 수 있는 이벤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혜순 교수(계명대 사회학과)는 "이번 주 로또복권 당첨발표후 많은 시민들이 가질 허탈감은 이미 예견된 일"이라며 복권 열풍에 빠졌던 사람들이 이를 잘 극복해야만 우리 사회의 건전성이 회복된다"고 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월드컵 때도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에너지를 쏟았지만 결과는 좋게 나타났다"며 "부정적 요소 외에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이미지로 나타날 이벤트를 만드는 것도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대구시종합자원봉사센터 최명숙 사회복지사는 "로또 광풍이 시사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마음 둘 곳을 못 찾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여가와 열정을 자원봉사에 쏟고 이를 통해 새로운 즐거움을 얻으며 살아가는 선진국 사람들의 예를 좋은 본보기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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