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위기의 지방대-국.공립대

입력 2003-02-07 13:16:59

과거 지방 국립대라고 하면 집안 형편이 어렵지만 머리는 좋은 인재들이 몰리는 학교로 통했다.

하지만 20여년만에 그 위상도 크게 달라졌다.

요즘은 서울지역 중하위권 대학과도 경쟁이 안될 정도로 쇠락했다.

이처럼 지방 국립대가 형편없이 미끄러진 이유는 뭘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제도와 지역경제, 대학 자구노력, 학부모 의식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배경에 깔려 있다.

대구경북지역 국공립대는 경북대를 비롯 대구교육대, 안동대, 상주대, 금오공과대, 도립 경도대 등 모두 6개. 나름대로 국공립 최고교육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맡고 있지만 하나씩 찬찬히 뜯어보면 실상은 그리 밝지 못하다.

한때 한강 이남 최고의 대학으로 손꼽혔던 경북대. 과거 비교조차 힘들었던 서울 중하위권 대학과도 비교우위를 판단하기 힘들 정도로 위축돼 있는 게 현실이다.

경북대의 위상이 이처럼 추락한 것은 한편으로는 지방대 위기를 가져온 요인들과 맞물려 있다.

지역경제 침체와 우수인재 수도권 유출, 지방대 출신 홀대와 취업난…. 그러나 경북대 구성원들이 곱씹어봐야 할 것은 과연 경북대가 일류대로 계속 발전하기 위해 얼마만큼 노력했는가 하는 점이다.

저렴한 교육비와 전국최고 수준의 캠퍼스 환경, 교수의 지식생산력 전국 상위권 등 입에 발린 자랑만 늘어놓을 게 아니다.

일류대에 걸맞은 장기발전전략과 비전을 갖고 학교측과 교수, 학생, 학부모 모두 발로 뛰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함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포인트다.

불행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일신학원 윤일현 진학지도실장은 "한마디로 한심하다"고 표현했다.

윤 실장은 "경북대만큼 학교 홍보도 않고 가만히 앉아서 학생 오기를 기다리는 학교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수도권은 말할 것도 없고 지방 사립대학들도 우수학생 유치와 졸업생 취업을 위해 교수들이 밤낮 가리지 않고 뛰고 있는데 반해 권위와 이름만 내세운 채 상당수 교수들이 학교와 학생들에 깊은 애정이 없으니 어떻게 일류대가 될 수 있느냐는 게 비판의 요지다.

가령 대구 성서에 사는 한 고교생이 경북대와 계명대 진학을 놓고 고민한다면 70, 80년대만 해도 뒤돌아볼 것 없이 경북대를 선택했지만 요즘은 의대 등 상위권 학과를 제외하면 집 가까운 계명대를 선택하는 경우가 눈에 띌 정도로 사정이 달라졌다는 것. "대구경북지역에서 대학 홍보에 가장 뒤떨어진 학교가 바로 경북대"라고 비판한 그는 "신입생 실태조사조차 없이 학생들이 지원 을 않는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수험생 유인책 등 자구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학교측은 이같은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

위상이 크게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학교 발전을 위해 본부나 교수들이 강도높게 구조조정을 추진해왔다고 자평한 김기찬 경북대 교무처장은 "지방 국립대 육성에 필요한 제도 정비와 정부 지원이 늘어나고 학교측의 자구노력이 현재보다 좀 더 강도높게 이뤄진다면 6, 7년내 국내 최고수준의 대학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노무현 당선자의 대구 토론회 방문시 김달웅 경북대 총장은 "서울대만큼 정부가 지원해준다면 경북대도 그만한 수준에 오를 수 있다"고 당선자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거듭 요청했다.

김 총장의 말을 달리 해석하면 그동안 정부가 밀어주지 않아서 경북대 수준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일리있는 이야기지만 왠지 석연찮은 구석이 남는다.

성장은 외부 지원에 앞서 뼈를 깎는 자기노력과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경북대가 얼마만큼 노력했느냐고 되묻는다면 답변이 궁색해질지도 모른다.

국고보조금 편중이 심한 것은 사실이다.

지방 국립대는 국립학교 설치령에 따르지만 같은 국립대이면서도 '서울대 설치령'이 적용되는 서울대의 경우 경북대에 비해 두 배 이상의 보조금을 받는다.

교수 인원도 서울대가 1천500여명인데 반해 경북대는 절반 수준인 830명에 불과하다.

대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기부금만 해도 그렇다.

자유경쟁 시장원리만 내세우다보니 국립대와 사립대간 기부금 규모도 크게 차이난다.

사립대 가운데 기부금 모금이 활발한 연세대의 경우 지난 2000년까지 모두 2천948억원, 고려대가 2천278억원을 모금했다.

지난 1992년부터 모금을 추진해온 경북대의 경우 2001년말까지 1천199억원을 모금하는데 그쳤다.

지방대육성 특별법 제정, 인재 지역할당제 등을 주창하며 지방대 발전에 발벗고 나선 박찬석 전 총장에 이어 지난해 부임한 김달웅 총장은 재임기간동안 재정확충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고, 모금확대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얼마만큼 결실을 맺을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경북대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구성원 전체의 합심 노력이 관건이다.

경북 북부권의 중심대학인 안동대와 이공계열로 특성화된 구미 금오공과대의 사정도 경북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수한 인재들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정부정책과 대학당국의 권위적이고 안이한 상황판단 등이 이들 대학 성장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경북대에 적을 두고 매년 재수하는 학생이 400~600명선…' 이 말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경북대 당국과 교수진은 고민해봐야 한다.

과도한 수도권 집중과 지방공동화 현상을 뚫고 지방 국공립대가 제 위상을 찾는 일은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풀어야 할 과제다.

제도나 남 탓에 앞서 지방대를 갉아먹는 무사안일과 권위주의를 극복하는 길만이 지방대학이 바로 설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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