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를 지키는 '거북바위'를 아십니까?
중구 봉산동 제일여중 운동장 한 구석에는 나무와 철책에 가려진 지름 2m 크기의 둥근 바위가 있다.
거북 등의 무늬와 닮은 각진 줄 홈이 패어 있고 머리·꼬리 모양도 완연해 영낙없이 거북이 엎드린 형상이다.
누가, 무슨 연유로 거북바위를 이곳에 만들어 놨을까? 조선 중종 때의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영조 때 쓰여진 '대구읍지'는 "대구에 읍을 창성할 때 지맥을 살펴 보았더니 남에서 북으로 통하는 기가 이 일대에서 흩어진다 하여 이를 잇기 위해 머리를 남으로 꼬리를 북으로 둔 돌거북을 놓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자리가 원래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었던 바 당시 달구벌에 불이 자주 나 불과 상극인 거북을 만들었고 그 후 불이 나지 않더라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현장 안내간판은 1934년에 발간된 '대구부사'(大邱府史)를 인용, 이 돌은 본래 "일종의 지석묘였고 모양이 자라를 닮아 후대에 귀갑문과 머리모양을 새겼다"고 적어 놓고 있다.
어찌됐건 이 일대는 거북과 인연이 많아 본래부터 연귀산(連龜山)이라 불린 것으로 기록돼 있다.
거북이 맥을 이은 산이라는 뜻.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대구읍지는 연귀산이 대구의 진산(鎭山), 즉 대구를 지키는 주산(主山)이라 기록하고 있다.
요즘은 팔공산이 대구의 진산 격이지만 읍성 규모가 작았던 옛날에는 거북바위를 제단 삼아 지방관리들이 기우제 등 제사를 지낸 연귀산이 진산이었다는 것.
연귀산은 조선조 순종 이후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을 울린 산이라 하여 '오포산'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1945년 '대구여자상업학교'가 들어서면서 본관 자리에 있던 거북바위는 수십m 남서쪽으로 옮겨졌고, 머리·꼬리 방향도 동서쪽으로 틀어져 대구의 남북 맥을 잇겠다던 선조들의 뜻은 찾을 길 없어졌다.
이에 대해 제일여중 채희중 교사는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아 거북바위의 존재조차 모르고 졸업하는 학생들도 더러 있다"면서 "거북바위가 하루빨리 문화재로 지정돼 체계적으로 관리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경북대 사학과 주보돈 교수는 "여러 문헌과 전설 등을 종합해 볼 때 거북바위는 대구 역사를 연구하는 데 가치 있는 유적"이라며 "더 이상 훼손되기 전에 시 지정 문화재로 등록해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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