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마을-고령 쌍림 계실마을

입력 2003-02-06 09:41:39

국도 33호선을 따라 고령군에서 경남 합천군을 향해 가다보면 도계와 인접한 곳에 고풍스런 기와집 100여 호가 대나무와 솔숲을 배경으로 어우러진 마을이 나타난다.

영남지역 사림파의 종조인 점필재(점畢齋) 김종직(金宗直)의 후손이 살고 있는 고령군 쌍림면 합가2리 속칭 계실마을이다.

고령군과 경남 합천군 합천읍을 연결하는 경남.북의 경계 길목이며, 88고속도로 고령IC에서 3.5㎞쯤 떨어진 산간지역으로 무오사화 당시 후손들이 은신하며 세거했던 마을이다.

마을 뒷산은 봄철이면 진달래가 만발하는 화개산(花開山)이며, 앞은 나비가 춤추는 산을 뜻하는 접무봉(蝶舞峰)이 외봉 낙타등처럼 뾰족히 솟아나 있다.

마을앞을 흐르는 개울물을 따라 고령방향으로 1㎞만 가면 해인사에서 내려오는 안림천을 만나게 된다.

합천방향으로는 지릿재를 지나 합천을 가로지르는 황강이 흐르고 있다.

이 지역은 지난 82년 이전만해도 길이 좁고 비포장인데다 경남경계에 길이 5.6㎞의 구불구불한 지릿재(재가 길어 지루하다는 뜻)가 있어 교통오지로 알려진 곳이었다.

그러나 전두환 전 대통령 집권 이후 합천으로 통하는 길고긴 지릿재를 비롯 도로를 재정비했으며, 지난해부터는 국도 4차로 확장 포장사업이 건설부에서 추진중이어서 3, 4년후면 지릿재를 터널로 통과하며 교통오지의 오명에서 완전히 벗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야은(冶隱) 길재(吉再)를 사사한 부친 김숙자(金叔滋)로부터 성리학을 공부해 영남지역 사림학파의 종조로 추앙받는 점필재 김종직은 사후 6년 연산군 시절 정적들의 모함으로 무오사화를 당해 당시 유일하게 생존한 13세된 아들과 일부 후손이 합천군 가야면 숭산리(당시 야로현)에서 귀양살이를 하다 1650년 점필재의 5대손인 김수휘(金受徽)가 이 마을에 입향한 이후 일선 김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한때 130 가구가 넘었던 이 마을은 심화되는 이농현상으로 현재는 70 가구에 불과하며 이중 타성 3 가구외엔 모두 일선 김씨 일족이다.

이곳에는 점필재의 17대 종손인 김병식(71)씨가 민속자료 제62호인 점필재 종택에 기거하고 있다.92년부터 98년까지 경북도교육위원을 역임했던 김씨는 소중한 점필재 문적 및 유품 114점을 한국전쟁 당시 지하에 굴을 파서 독에 넣어 보관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소중한 유품들은 무오사화.임진왜란을 거쳐 한국전쟁의 소용돌이속에서도 전해내려 오고있어 지난 85년 경북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됐으며, 지난해 문화재청에 보물로 지정 신청을 해 심의중에 있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에서 살던 김씨가 도보로 고향인 이곳까지 내려와 유품들을 보관함으로써 인민군 중대본부가 종택에 자리잡은 위험한 지경에서도 유실되지 않게 됐다.

유품 중에는 조선조 성종이 하사한 매화연(벼루)을 비롯 상아홀, 원형 전통, 유리주병, 당후일기, 호구단자 등이 있어 소중한 사료로 여겨지고 있다.

1800년경 지은 종택은 안채와 사랑채, 중사랑, 고방 대문간, 묘우 등이 ㅁ 자형으로 배치돼 있고 그 가운데 2칸에 대청을 두고있으며 좌우에 큰방과 건넌방을 두었다.

사랑채는 일자형으로 동편끝에 2칸의 마루를 두고 그 왼쪽에 방을 꾸몄다.

종택에서 5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점필재의 유업을 기리고 후학 양성의 산실이 되었던 도연재(道淵齋:경북도문화재자료 111호)가 자리잡고 있다.

특히 다행한 것은 행정자치부에서 지난해부터 시행하는 전통마을가꾸기사업에 이 마을이 선정돼 72개 사업에 19억7천만원을 투자할 계획으로 설계중이어서 앞으로 유물을 보존할 유물각과 복합문화공간인 계실각.공원.주차장 등을 갖추고 도농간 교류를 위한 각종 테마를 추진중에 있다.

당초 유물각은 고령군이 문화재청으로부터 2억원만 예산을 확보했지만 지난해 현지를 방문한 이근식 행자부 장관에게 김병식씨가 추가로 예산을 지원해 줄 것을 건의, 3억원 지원을 쾌히 승락받아 5천300㎡(1천600여평)의 마을입구 농토를 매입해 훌륭한 전시각을 지을 수 있게 됐다.

또 마을가꾸기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에는 마을부녀회에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전통한과를 손수 제조해 대구시민들에게 공개하기도 했다.

한과제조에 앞장선 이추자(62)씨는 색깔과 모양, 맛에서 독특한 비법을 공개해 인기를 차지하고 있다.

마을가꾸기사업은 각종 마을 시설물의 정비에다 이벤트개발.체험프로그램.도농교류사업.각종 전통행사 등에도 투자하기로해 앞으로 격조있는 전통마을로서의 면모를 일신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김병식씨는 "전통 마을의 옛 모습을 훼손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사업을 추진해야된다"면서 각별한 관심을 피력했다.

또 이 마을은 군내에서 가장 소득이 높은 딸기를 처음 재배한 곳으로 현재 고령향교 전교인 김기수(73)씨가 1970년대 초 딸기를 심어 주변 안림리 등지로 확대하게 된 것이다.

당시만해도 벼와 보리로만 생계를 유지하면서 다른 작물을 재배할 생각을 못했으나 김씨가 처음으로 딸기를 재배, 고령을 전국에서도 이름난 딸기 주산지가 되게끔 했다.

이 마을에서는 들이 좁아 현재 20가구가 딸기를 재배하고 있지만 인근 안림리 등지는 온 들이 하얀 비닐하우스 물결로 덮일 정도이며 덕곡면 등 다른 면지역으로도 확산돼 고령군내 모두 232㏊나 딸기가 재배되고 있어 농가 소득향상에 큰 몫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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