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시민단체와 정치활동

입력 2003-02-05 13:22:31

21세기는 문화의 시대, 정보화의 시대이기도 하지만 또한 시민의 시대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는 다양한 시민운동을 통하여 정치·경제 체계의 부당한 활동들에 대해서 감시하고 비판하는 흐름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에게는 정부와 시민단체 사이에 상호 친밀한 관계가 성립되는 또 다른 하나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른바 정부와 비판적인 진보세력 사이에 상생(相生) 관계가 확립된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보수세력들이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서 저항하는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노무현 정권의 탄생은 그 출발점부터 시민운동단체의 움직임과 일정 부분 궤를 같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차기 정부의 인수위원회에도 진보적인 시민운동가가 참여하고 있다.

또한 근자에는 바로 이 인수위원회가 국민 참여 확대를 통한 저비용 선거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하여 공익성을 인정받은 시민단체에게 낙선운동까지 허용해주고자 한다.

사실 2000년 총선 당시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은 대법원에서 위법 운동으로 판결되었다.

물론 우리 사회의 정치적 발전을 위해 시민단체들에게 낙선운동을 허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제도를 허용하기 전에 먼저 과거의 역사적 교훈을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시민운동에서 주장하는 '시민'이라는 개념은 고대 시대에까지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이 시대의 사회 변화의 주체로서 부각시키고자 하는 '시민'은 과거의 '시민'과 많은 차이를 지니고 있다.

즉 오늘날의 시민은 고대적 의미의 폴리스적 시민도 아니고, 그렇다고 근대적 의미의 부르주아적 시민도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근대 이전의 시민이나 이후의 시민이나 이들은 모두 권력의 중심부에서 권력을 소유한 주체들이었다.

이로 인해 버림받은 주변부의 문제점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자각할 능력을 스스로 상실하고 있었다.

사실 근대의 시민은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확립하기 위한 혁명의 주체들이었지만 이미 부르주아 지배 체제를 산출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노동자 계급, 즉 민중집단으로부터 심한 저항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의 사회주의 사회에서 새롭게 등장한 민중집단조차 또 하나의 당관료 지배 체제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래서 현대사회에서 요구되고 있는 새로운 시민은 더 이상 중심부에 들어가서 권력을 소유하는 주체가 아니라 주변부에서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며 저항하는 주체로 거듭날 것을 요구받고 있다.

그야말로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 요구되는 시민은 '정부 없는 조직'(No Goverment Organization)에 충실할 수 있는 주체이다.

이들은 부당한 권력을 견제하고 비판하여 정당한 권력이 작동하는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한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권력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참여하는 세력과 그것에 비판적이고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세력이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이른바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중심 체계에 대해서 생활세계에 몸담고 있는 우리가 자율적이고 비판적인 주체로서 그 역할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 주체마저도 모두 중심에 들어가려고 할 때 비판과 감시를 담당할 주체는 약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며, 또한 중심에 들어간 그들도 비판적 능력을 상실할 수 있다.

근자에 현 정부와 관련하여 밝혀지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 역시 이런 상황과 결코 무관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21세기 시민운동의 생명력은 감시의 철저화와 비판의 활성화를 통하여 공론장을 제대로 마련하는 데 있다.

이제 우리의 시민운동이 좀 더 발전하고, 우리의 정치가 한 단계 성숙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중심에 들어가는 사심(私心)의 운동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는 공심(公心)의 운동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시민단체의 낙선운동 역시 이와 같은 관점 아래서 신중하고도 지혜롭게 검토·모색되어야 할 것이며, 우리는 이 운동이 또 하나의 정치권력을 추구하는 '시민 없는 시민 운동'이 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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