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입력 2003-02-05 13:25:21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눠 본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결혼 후 처음인것 같기도 하구요"'메디슨카운티의 다리'에서 후란체스카와 킨 케이드가 우연히 만나 일과 추억과 꿈에 대해서 얘기한 후 후란체스카가 헤어짐을 아쉬워 하면서 하는 얘기다.

우리는 일상에서 가족이랑 혹은 주위사람들이랑 어떤 식의 대화를 얼마나 하고 살고 있는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정갈한 부엌에서 가족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식사 후에는 함께 공원을 산책하고 고즈넉한 밤이면 촛불을 켜고 함께 음악을 듣고 그런 인생을 꿈꾸면서 가정을 만든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일상은 그저 관습이 돼 버리고 할 얘기도 없어져 버리는 삭막한 삶이 되어버린다.

할 이야기란 너무도 뻔하고 메마른 얘기들- 아이들 얘기, 돈 얘기, 시집 얘기, 쓸데없는 이웃 얘기, 그나마도 들어주면 고맙고 괜찮은 남편이다.

그 정도의 얘기도 할 시간이 거의 없거나 아니면 어쩌다 마주 앉아도 몇마디 시작하면 짜증을 내거나 무쪽 같이 중간을 토막내거나 아니면 코를 골고 잠 들어 버린다.

아이들 데리고 종일 씨름하거나 아니면 TV리모컨 들고 밤 늦도록 애꿎은 TV만 이리저리 돌려대면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삶은 흘러가고 부부는 그저 체념하거나 아이들 때문에 사는 삶이 되어 버린다.

그런데 그렇게 하찮게 생각했던 내 아내가 어느 기회에 괜찮은 남자랑 멋진 대화를 나누고 그 남자에게 보석 같은 존재로 여왕대접을 받는다면 어쩔 것인가. 어느 내외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라는 소설을 읽고 이 책은 절대로 아내에게 보여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 본것 처럼 시치미를 떼었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아내도 오래전에 그 책을 읽고도 안 읽은척 하고 있었다고 한다.

속 깊은 곳에는 무언가 아내에게 혹은 남편에게 평소에 미안한 감정이 존재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왜 남한테는 친절하고 상냥하고 배려도 잘하면서 가까운 사람끼리는 서로 상처를 입히고 무관심하고 짜증을 내곤 할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많은 사람들이 한번뿐인 삶을 너무도 삭막하게 살아버리고 나중에사 우리는 가족의 소중함과 인생의 귀중함을 알게된다.

생각해 보면 부부가 또는 가족이 함께 나눌 대화가 얼마나 많은가. 살랑거리는 바람, 움트는 새싹, 흐르는 시냇물,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들, 내가 가졌던 꿈들, 세웠던 계획 등을 얘기하고 들어줄 수 있다.

그래서 당신이 소중하다 말해주고 그러다 보면 희망이 생기고 세상이 살만 해지는 것을 대화로 풀지 못할 일들이 어디 있을까. 바야흐로 입추가 지나고 봄이 저만치 언덕을 넘어오고 있다.

먼저 당장 오늘 저녁 퇴근길에 술 한잔 줄이고 프리지어 한다발 아니면 작은 봄꽃 화분 하나 사들고 집으로 가면 어떨까. 더 좋은 것은 볼만한 영화나 연극 티켓 두장 사서 집으로 가면 어떨까. 티켓을 내밀면서 아내에게 '당신은 정말 봄을 닮아서 화사하고 아름답다'고 말해보면 어떨까. 집안에 갑자기 생기가 돌고 아내의 얼굴은 봄처럼 새롭게 피어날 것이다.

거기다 작은 카드에 글이라도 몇줄 써 아내 혹은 남편의 주머니에 살그머니 넣어둔다면 그 가족은 갑자기 얼마나 행복해질까.

마음 깊숙한 곳에서 꿈꾸고 갈망하는 아내들의 킨 케이드(남자주인공)를 몰아내는 봄이 되기를 바란다.

남편들의 말 한마디 작은 미소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기만 하면 아내의 내면에 감춰져있던 불만은 봄눈처럼 녹아내릴 것같다.

올 봄 그런 행복한 부부들을 객석에서 많이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나는 이제 연극'메디슨 카운티의 추억'의 막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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