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패션-손뜨개

입력 2003-02-03 17:12:31

겨울이 정점에 다다랐는지 매서운 추위에 목덜미가 오싹하다.

이럴 때 생각나는 것이 엄마의 체온이 녹아있는 손뜨개 스웨터. 어린 시절 아빠의 낡은 조끼를 올올이 풀어 감쪽같이 스웨터로 만들어주던 엄마의 손길이 신비롭게 보이기까지 하던 손뜨개. 엄마의 스웨터 하나면 추운 줄 몰랐다.

사는게 바빠지면서 '뜨개실 값으로 차라리 사 입지'하는 생각들이 일반화돼 있지만 최근 들어 손뜨개에 대한 관심이 다시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뜨개질 실이 다양해지고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으로 개성있는 옷을 만들 수 있다는 매력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방, 핸드폰 케이스 등 소품들을 손뜨개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서점에 가면 소품에서부터 일상복까지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초보자를 위한 입문서도 많이 나와 있다.

서문시장의 뜨개방 '서문모아'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로 물어가며 뜨개질을 하는 여성들이 소복히 모여있다.

10대 후반에서부터 70대 할머니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제각각 목도리며 스웨터, 아이들 옷 등 다양한 물품을 뜨고 있다.

엄마 소개로 뜨개질을 시작했다는 이정화(19)양도 그 사이에서 남자친구의 목도리를 뜨고 있었다.

"커플 목도리가 완성되면 커플 스웨터를 뜰 거예요". 이양의 어머니 역시 뜨개질 마니아. 아빠의 조끼, 스웨터는 물론 수시로 예쁜 가방을 만들어 주위에 선물하고 있다.

추순자(58)씨는 뜨개질의 폭을 훨씬 넓혀놓았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뜨개질을 시작한 추씨는 온 식구의 한복은 물론 세 딸들의 웨딩드레스도 직접 손으로 떠 주위를 놀라게 했다.

웨딩드레스는 4, 5달 걸려 완성한 만큼 딸을 시집보내는 어머니의 정성을 느끼게 한다.

추씨는 20, 30년째 옷을 사입은 적이 없다고. "모든 영역의 제품을 뜨개질로 다 만들 수 있습니다.

편하고 나만의 개성을 살릴 수 있어 정장, 한복, 소품 등 모든 것을 손뜨개로 해결하고 있어요". 손뜨개 자랑에 침이 마른다.

심지어는 인형까지 손뜨개로 떠 손주들에게 선물한다.

뜨개질의 영역은 단순히 옷에 머무르지 않는다.

다양한 실을 이용한 세련된 디자인으로 사계절 옷은 물론 커튼, 차시트 등 각종 생활용품을 제작하고 있다.

취미로 시작해 창업하는 경우도 많다.

나애향(33)씨는 학원강사를 하면서 뜨개질을 취미로 하다가 3년 전 본격적으로 창업한 사례. 10평 남짓한 나씨의 '라사라 뜨개방'을 찾는 손님은 대략 100명 정도이다.

수입은 보통 직장인들보다도 짭짤하다고 귀띔한다.

동네 뜨개실 가게는 시어머니 흉이며 자식자랑으로 잠시도 조용할 새 없는 동네 사랑방의 역할도 했다.

지금은 굳이 뜨개실 가게를 찾지 않아도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올 겨울, 손뜨개를 배워 가족들을 위한 작은 선물을 마련한다면 추운 겨울이 더욱 따스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글: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사진협조:추순자손뜨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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