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北송금 수사' 정면대치

입력 2003-02-03 16:11:29

대북 송금과 관련,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민주당이 정치적 해결을 위한 국회에서의 대화를 촉구한데 대해 한나라당은 '국민적 기만행위'로 규정하고 '진상조사특위' 구성과 함께 김대중 대통령의 퇴진문제까지 거론, 정국이 급랭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사청문회법을 비롯 인수위법과 국회관련법을 처리키로 예정된 2월 임시국회의 파행운영마저 우려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3일 현대상선의 2천235억원 대북송금 문제와 관련, "외교적 파장과 국익을 고려, 진상규명의 주체와 절차, 범위 등은 국회가 판단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노 당선자는 이날 오전 열린 대통령직 인수위 전체회의에서 대북송금 지원 파문에 대해 "'진상은 밝혀져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이낙연 당선자 대변인이 전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통치행위' 발언이후 언급을 자제하던 노 당선자가 전날 문희상 비서실장 내정자가 언급한 국회를 통한 정치적 해결에 동조하고 나섬에 따라 대북송금문제에 대한 검찰수사 여부와 노 당선자의 입장선회 배경 등을 둘러싸고 적잖은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대북송금문제에 대한 검찰수사 착수 여부에 대해서도 "국회에서 판단했으면 한다"고 밝혀 검찰권 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한나라당은 3일 대북송금사건과 관련, 이해구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민주당정권 대북뒷거래 진상조사특위'를 구성해 본격적인 진상규명 작업과 함께 법률적 검토를 거쳐 관련자 전원을 고발키로 했다.

한나라당 김영일 사무총장은 3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정치적 해결은 정략적 발상에서 나온 사기행위"라며 "아직도 대북 뒷거래에 대한 실체와 배경은 베일에 쌓여져 있는데 신·구정권은 이를 덮으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또 "만약 검찰 수사가 미진할 경우 검찰총장의 탄핵소추도 적극 검토할 것이다"라며 압박했다. 서청원 대표는 2일 방미 출국에 앞서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국기문란 등의 범죄행위가 드러난다면 김대중 대통령은 퇴진을 포함해 직접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김 대통령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박종희 대변인은 3일 "지난 국정감사에서 '대북지원에 1달러도 사용된 적 없다'고 한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설장을 위증죄로 고발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이어 "사건 관련자들의 해외도피 가능성도 있어 관련자 출국금지를 정부에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지난 미국방문에서 내가 알아보니 (이번 사태가)국내·외적으로 매우 중요하고도 민감한 사안임을 깨닫게 됐다"며 "국회차원에서 여야가 대화를 통해 해결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평수 수석부대변인은 "한번의 실수로 그동안 어렵게 조성된 한반도의 화해와 협력의 기조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로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야당의 협력을 촉구했다.

서명수기자 diderot@imaeil.com

박상전기자 mikypark@imaeil.com

◈ 해설=金·盧 정치해결 가닥

2억달러 대북 비밀지원 문제의 해법에 대해 청와대와 노무현 당선자측이 정치적 해결 쪽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 내정자는 2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검찰조사가 국익차원에서 실익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국회에서 국민적 합의를 통해 풀어나가는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는 문 내정자가 지난달 15일 기자간담회에서 『(대북송금은)통치행위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한 발언과 김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감사원 발표 직후 『국가의 장래 이익을 위해서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 사안을 검찰로 가져갈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김 대통령과 문 내정자의 일련의 발언으로 미뤄볼 때 대북송금사건의 사법처리 불가 입장은 오래전부터의 교감의 결과라는 관측까지 낳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노 당선자가 방송대담이나 법무부 보고 등 여러차례 밝힌 『정치적 고려없는 검찰 수사』라는 입장은 결국 여론을 의식한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향후 노 당선자에게 상당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청와대와 노 당선자측이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는 해법은 사법처리 불가 뿐이다. 문 내정자가 내놓은 국회내에서의 해결 방안에 대해 청와대측은 아직 구체적인 입장은 내놓지 않고 있다. 양측간 아직까지는 완전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그냥 통치행위라며 덮을 수는 없다는 점, 그리고 이 방안 이외에는 사법처리를 피해갈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을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암묵적인 동의를 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사법처리 불가 방안이 가능하냐는데 있다. 한나라당은 즉각적인 검찰수사를 요구하면서 검찰수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국정조사와 특검제 등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강력히 추진할 것이라며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또 청와대가 대북 비밀지원 의혹이 불거졌을 때 『그런 일이 없다』면서 부인으로 일관한 점과 대북 비밀지원이 사실로 드러난 이후에도 송금과정 등 구체적인 사실에 대해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데 따른 여론의 악화도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나아가 국회내 해결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이냐라는 데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문 내정자가 말한 해결방안은 결국 조사 대상을 제한하고 결과도 미묘한 것은 공개하지 않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정경훈기자 jgh0316@imaeil.com

▷盧 당선자, 대북송금 '말바꾸기'

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 내정자가 2일 현대상선의 대북송금 문제에 대해 정치적 해법을 주장하고 나선데 이어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도 3일 이에 동의하고 나섬에 따라 노 당선자의 말바꾸기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날 열린 대통령직 인수위 전체회의에서 노 당선자는 "외교적 파장과 국익을 고려해서 진상규명의 주체와 절차와 범위 등을 국회가 판단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물론 그는 "진상은 밝혀져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낙연 당선자 대변인은 "어제 문 비서실장내정자의 말과 취지가 다르지 않다"고 덧붙였다. 노 당선자가 이날 직접 언급한 대북송금문제에 대한 정치적 해법은 그동안 그가 밝혀온 입장과는 180도 달라진 것이라는 점에서 입장 급선회 배경에 관심이 일고 있다.

그는 대선과정은 물론 당선된 이후에도 철저한 검찰수사를 통한 진상규명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는 지난 해 10월13일 KBS TV토론에서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냥 넘어가면 남북간의 신뢰성이 상실될 수 있고 정경유착과 내부거래의혹 등 온갖 의혹을 낳기 때문에 정부의 신뢰성을 유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당선된 이후에도 노 당선자의 입장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는 지난 1월18일 KBS와 가진 TV 국민토론에서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민심도 살피고 정치적 고려가 필요하지만 사실을 밝혀나가는 과정에서 정치적 고려가 들어가서는 안된다"고 말했고 이어 22일 한나라당사를 방문한 자리에서는 "검찰이 정치적 고려없이 원칙적으로 수사해주기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취임 전까지 수사가 안 되면 취임 이후 투명한 수사가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물론 그는 정치적 해결에 동의하는 듯한 언급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라는 조건을 달았다(1월18일). 그래서 이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사법적 처리는 별개라는 입장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지난 달 30일 김대중 대통령이 감사원의 특검결과가 발표된 직후 검찰수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서자 며칠간 침묵했다. 그러다가 2일 문 비서실장 내정자를 통해 정치적 해결로 방향을 선회한 데 이어 이날 국회를 통한 정치적 해결이라는 쪽으로 입장을 최종 정리한 것이다.

이 대변인은 이날 노 당선자가 입장을 바꾼 것이 아니라고 해명하면서도 "(노 당선자의 언급은)시일을 오래 끌지 않고 한꺼번에 처리되었으면 하는 기대가 담겨있다"고 덧붙였다.

노 당선자가 이처럼 대북송금문제에 대한 국민적 의혹에 대해 국회를 통한 정치적 해결책을 모색하고 나선 것은 퇴임하는 김대중 대통령측과의 갈등은 물론 향후 남북관계를 염두에 둔 다각적인 포석으로 해석되고 있지만 한나라당을 비롯한 야당과 국민여론이 이를 수용할 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서명수기자 diderot@imaeil.com

▷對北송금 논란 임시국회 차질 줄듯

대북 송금 문제를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 향후 정국 경색은 물론 인사청문회법을 비롯 인수위법, 국회 관련법 처리를 위해 합의했던 이달 임시국회 일정 및 노무현 당선자가 약속했던 공통 공약의 입법화 추진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한나라당이 특검제와 국정조사를 강력히 요구하고 나설 경우 법안 처리보다는 대북송금 규명문제가 여야 공방의 쟁점으로 부상, 임시국회 파행마저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번 임시국회를 거대 야당의 강력한 면모를 보여주는 계기로 삼으려는 한나라당의 강공세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라 정국 운영 주도권을 둘러싼 여야 공방은 한층 거세질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특히 국회 의석수의 과반을 넘게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대북송금 문제를 내부 응집력을 다지는 계기로 삼을 계획이라 여야간 전격적인 합의가 없는 한 당분간 정국 경색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나라당의 강공에 민주당의 대응책이 마땅하지 않은 것도 향후 정국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민주당은 대북송금 문제와 국회일정을 별개로 처리하자고 주장하지만 한나라당의 협조를 받을 명분을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 게다가 정치개혁이란 대명제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한나라당을 넘어야 할 산으로 보고 있는 상황이라 전격적인 합의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민주당의 경우 또 대북송금 문제와 관련해 일부 의원들이 "정치적 해결 방침에 무조건적으로 찬성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어 내부정리 작업을 선행해야되는 부담마저 안고 있다.

박상전기자 mikypark@imaeil.com

▷북한, 송금문제 "정상거래"주장

북한은 현대상선의 대북송금과 관련, "현대와 아.태평화위 사이의 정상적인 거래"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반통일세력의 불순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란 식으로 맹비난하고 있다.

북측이 이처럼 신속하게 입장을 밝힌 데는 경협사업의 차질을 막기위해 현재의 논란을 조기 종식시키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게다가 핵문제로 국제사회와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까지 감안하면 남측과의 교류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을 더욱 느끼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상적인 거래"라는 점 등을 거듭 부각시킴으로써 우리 정부 및 현대측에 대한 측면 지원에도 나선 셈이다.

북한 아태평화위는 2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6.15 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북과 남사이의 교류와 협력이 활발해지고 있는 때 남조선의 한나라당과 그에 동조하는 일부 극우보수 반통일세력들은 경제협력을 대북 비밀자금 지원의혹이라며 순조롭게 나아가는 북남관계에 제동을 거는 불순한 놀음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논란은 또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가로막으려는 미국정책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성명은 "우리와 현대간의 경협사업은 2000년6월 북남수뇌 상봉 훨씬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진행돼 왔다"며 "현대아산과 추진해온 다년간 개발사업의 내용과 규모는 매우 방대한 것으로 이를 시비하고 중상한다는 것은 다른 불순한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아태평화위 리종혁 부위원장은 서울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현대와 추진해온 사업들, 즉 관광.철도.전력.통신.고선박 해체. 최첨단 전자공단. 개성공업지구 건설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한뒤 "이같은 정상적.합법적인 경협을 문제시한다면 현재 추진중인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 개성공업지구 건설도 하지 말아야 하고 오직 대결과 충돌, 전쟁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북측은 경협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북측이 지난달 31일 "금강산육로 시범관광을 오는 4일부터 갖자"며 "현대아산의 정몽헌 회장과 김윤규 사장이 제일 먼저 통과할 수 있도록 할 것"을 제의한 것도 주목된다. 경협사업의 계속을 위해 검찰에 의해 출국금지 조치 등을 당한 현대 관계자들에 대한 구제에 나선 격이다.

서봉대기자 jinyoo@imaeil.com

▷對北송금 '진상규명·문책'촉구

지역의 시민단체와 법조계 인사들도 북한 송금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대구 경실련 조광현 사무처장은 "국민적 의혹에 대해선 철저히 진상을 밝혀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며 "아무리 통치행위라 하더라도 사실을 덮을 수는 없다. 지원을 하더라도 투명성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 참여연대 김중철 사무처장은 "대북 지원에서도 국민적 합의가 우선"이라며 "앞으로도 남북관계에서 비슷한 문제가 재발될 수 있는 만큼 특검제를 도입해서라도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6.15공동선언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구.경북통일연대' 오택진 사무국장은 "북한 송금 논란과 관련해 현재 규명된 실체는 없고 온갖 설만 난무하고 있다"며 "먼저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 그러나 민족문제가 정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춘희 변호사(대구변호사회 홍보이사)는 "대북 송금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국민들이 모르는 상황에서 북한 송금을 대통령의 통치행위로 봐 달라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정치적 판단보다 진실 규명이 우선이고 이를 토대로 통치 행위에 대한 검찰 수사와 사법적 판단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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