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개비-시립미술관 재검토해야

입력 2003-01-30 18:12:18

며칠전 기자는 대구시 수성구 삼덕동 대구시립미술관 건립 예정지에서 다리품을 한번 팔았다.

오는 2008년쯤 완공될 시립미술관이 적합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는 지를 알아보겠다는 어줍잖은 생각 때문에 시도한 일이었다.

코스는 달구벌대로의 월드컵경기장 안내판 앞에서 시립미술관 예정지까지로 잡았다.

직선거리로 1.5㎞ 남짓한데도 빠른 걸음으로 30분 가까이 걸렸다.

달구벌대로를 지나는 지하철 2호선이 개통된다 하더라도 도보로 미술관을 찾기에는 무척 부담스런 거리였다.

나중에 지하철 역사와 시립미술관을 연결하는 셔틀버스가 필요할 것이고, 시민들이 지하철과 셔틀버스를 갈아타면서 미술관을 찾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곳을 걸으면서 대구시립미술관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철을 다시 밟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수 없었다.

도심 외곽에 위치해 있고 셔틀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치명적 약점 때문에 실패한 미술관의 전형으로 불리는 국립현대미술관을 본받아서야 말이 되겠는가. 얼마전 대구에 들른 오광수 국립현대미술관장에게 대구시립미술관의 입지 얘기를 해줬더니 그는 기가 찬다는 반응을 보였다.

도대체 대구사람들은 예전의 실패 사례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고 있느냐는 표정이었다.

"시민 생활권과 동떨어진 미술관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사실 미술관을 지을 때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접근성이다.

미술관을 보기위해 하루시간을 몽땅 투자해야 한다면 처음 한 두번은 모르겠지만 더 이상 찾을 시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미술관은 큰맘먹고 찾아가는 곳이 아니다.

그냥 왔다 갔다 하다가 잠깐 들러 약간의 정취를 느끼는 곳쯤으로 족하다.

솔직히 대구 여건상 뭘 그리 눈에 번쩍 들만한 전시회를 자주 보여줄 수 있겠는가. 미술관이 시민들의 생활권과 가장 밀접한 곳에 위치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지난해 여름 파리에 갔을 때 프랑스가 자랑하는 첨단 미술관 '팰리스 드 도쿄'에 간 적이 있다.

첨단 미술관의 핵심은 탁월한 장비나 시설이 아니라 시민과의 친화력에 있었다.

고풍스런 건물을 창고처럼 개조, 관객과의 거리감을 없애고 널따란 홀에 긴 식탁을 여러개 놓아두고 시민들이 하루종일 먹고 떠들 수 있도록 설계했다.

친구.연인들의 약속이나 모임이 모두 미술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물론 프랑스와 대구의 문화환경이 같을 수는 없지만, 21세기에 살면서 예전에나 있음직한 일을 되풀이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이왕 늦게 짓는 미술관인 만큼 널따란 부지, 버젓한 건물에 그럴듯하게 시작하겠다는 대구시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접근성과 효율성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다.

조해녕 시장은 내년까지 미술관 부지매입을 끝내고 2005년부터 공사에 들어가겠다고 장담을 하고 있지만 예산사정도 그리 녹록해 보이지 않는다.

여러 여건을 두루 감안할 때 시내 중심가에서 적은 돈을 들여 자그마한 규모로 미술관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대구시가 빠른 시일내에 미술관 건립계획을 새로 마련하는 것이 옳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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