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프랑스로 들어가 본 초행길의 운전자라면 누구나 느끼는 점이 있다.
독일과 달리 프랑스의 고속도로는 길 찾기가 아주 쉽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나폴레옹 집권 이후 중앙 집권체제의 전통을 이어온 유럽의 대표적인 국가다.
따라서 서울과 같이 모든 것이 프랑스의 수도인 파리로 향한다.
물론 고속도로도 예외가 아니다.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도시인 스트라스부르에서 파리를 간다면 A-4 고속도로를 따라 죽 내달리면 된다.
또 파리에서 2, 3의 도시인 리옹과 마르세이유를 갈때도 A-6 도로를 따라 달리면 된다.
특히 우리의 수도권처럼 고속도로를 따라 1시간 정도 극심한 정체가 이어지는 파리권을 벗어나면 별다른 도시들을 찾아 볼 수가 없어 5시간 거리인 리옹까지는 아무런 걱정없이 찾아갈 수가 있다.
그러나 지방화와 분권을 50여년간 정책적으로 추진해온 독일은 상황이 딴판이다.
수도권 집중이 없고 지방도시들이 잘 발달된 탓에 고속도로가 바둑판처럼 촘촘이 이어져 있으며 곳곳에서 비슷비슷한 도시들이 출현한다.
표지판도 서울과 파리를 기점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의 거점 도시에서 출발한다.
낯선 초행자라면 길을 잃기가 십상이다.
지방분권과 분산의 현주소가 경제의 대동맥 역할을 하는 고속도로를 통해서도 단적으로 드러나는 셈이다.
물론 프랑스는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도권 억제와 지방 분권을 추진해온 국가며 세계 최고인 우리의 수도권 집중을 파리권과 같은 수준에서 비교할 수도 없다.
그러나 50년대부터 분권 정책을 추진해온 프랑스는 아직도 수도권 집중이 국가 경쟁력을 가로막고 있다며 분권을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삼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취임한 장 피에르 라파랭(53) 프랑스 총리는 국정 4대 과제를 발표하면서 대대적 지방분권 추진을 가장 먼저 내세웠다.
그는 취임 직후 의회 연설을 통해 "지방분권화의 새로운 혁신적 단계와 프랑스 22개 행정지역들의 권한을 명기하는 개헌을 추진 할 것"이라며 "프랑스 지방들도 '실험'을 하도록 격려받을 것"이라며 이러한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이에 따라 지금 프랑스는 중앙 기구와 소속 공무원의 대대적인 지방 이전을 두고 나라 전체가 시끄러운 형편이다.
이러한 프랑스의 분권화 정책의 역사는 이미 50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여만명에 불과하던 파리 인구가 2차대전 이후인 50년대 500만을 넘어서면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프랑스 정부는 각종 수도권 억제 정책과 더불어 지방분권·분산 정책을 시도하게 된다.
그러나 수도권 정책과는 달리 지방분권책은 80년대 이후 빛을 보게 된다.
한국의 현 모습처럼 수도권에 기반을 둔 관료와 기득권층의 반발이 분권을 가로막아 왔기 때문이다.
81년 선거 공약으로 지방분권을 내세웠던 미테랑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비로소 프랑스는 제도 개혁을 통해 분권을 실현하게 된다.
미테랑 대통령이 추진한 분권의 주요 골자는 중앙정부의 권한 축소와 지방 정부의 재정력과 권한 확대다.
우선 국가가 갖고 있던 행정 및 재정의 사전 통제 권한을 폐지했으며 재원을 대폭 지방으로 이양했다.
또 지방의 권한이 커짐에 따라 중앙 감사원 제도를 각 지방 감사원 제도로 개편하고 지방의회 활성화를 위해 지방의원의 수당과 지위를 현실화 했으며 지방행정 민주화를 위해 주민투표제를 도입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눈여겨 볼만한 독특한 정책은 관선 지사를 폐지하는 대신 기존 지사의 역할을 지방에서 중앙 정부를 대변하는 대표자의 역할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한국처럼 문어발식으로 난립하던 중앙정부 산하 각 부처의 특별지방행정기관을 지사 아래로 통합했으며 중앙 장관이 가지던 각종 권한을 지사에게 위임하는 행정의 분권화를 시도했다.
따라서 지방의회의 장인 민선 시·도 지사와 관선 지사가 서로 대화를 통해 지역 발전 방안을 도모하고 있다.
또 지방분권에 따른 지방간 격차 해소를 위해 재정력이 우수한 지방이 열등한 지방에 재원을 지원하는 재정방식을 도입했으며 사무권한의 지방 이양에 따른 제반 경비를 국가에서 부담해 지방정부의 부담을 최소화했다.
분권화 이전 프랑스와 유사한 중앙집권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주의깊게 살펴 볼만한 대목들이다.
프랑스가 이러한 분권책을 시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다타르'라는 그들만의 기구가 큰 역할을 맡아 왔다.
63년 창설된 다타르(DATAR)의 대변인 넬리 밥체프(Nelly Bobtcheff)씨는 "다타르는 중앙기관 및 공공기구와 대기업의 지방분산을 정책적으로 추진해 왔으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처간 또는 중앙과 지방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고 밝혔다.
또 "분권이 어느정도 추진된 현 상황에서는 지방 단체간 협력과 결속을 돕고 있으며 지방자치의 꾸준한 실현을 위해 공공행정 기관들의 올바른 임무수행을 감독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덧붙였다.
파리=이재협기자 ljh2000@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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