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사회".
대구를 비롯한 경북.경남 등 영남인들의 크고 억센 목청은 무뚝뚝하다는 특유의 기질만큼이나 전국적으로 공인받은 특성. 그러나 "목소리만 크고 정작 자신의 의사전달은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다른 지방인들의 핀잔앞에 '큰 목청=활력.박력'이란 변명은 궁색하기만 하다.
자기 목소리만 키우고, 남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 습관은 이제 벗어버려야 할 악덕이다.
"좀처럼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목소리만 키우죠. 자기 말이 법인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충청도 출신의 손주환 경장(38.대구 서부경찰서 교통사고 조사반)은 "이 고장 사람들은 일단 고함으로 기선을 '제압'하면 사고가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이런 사람일수록 사고현장에서 경찰서로 옮겨오면 자세를 낮춘다"고 말했다.
주차위반차량 단속을 담당하는 김상호(45.대구 서구청 지역교통과)씨는 "대구사람들은 상대방 말을 중간에 끊거나 아예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차분하게 상대의 입장을 듣지않고, 삿대질이나 고함등의 액션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막무가내식 목청 높이기는 시비가 잦은 곳에서만 목격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연말 구 계명전문대 인근 식당에서 망년회를 가진 이영철(30.대구시 신천동)씨는 옆 테이블 손님과 언쟁이 붙었다가 '참을 인(忍)자 셋'을 새 좌우명으로 삼게 됐다.
"앞 사람과 이야기도 못할 정도로 시끄러워 좀 조용히 해달라고 했더니 되레 '우리가 언제 떠들었냐'며 시비를 걸어오더라"는 것.
대구 114 전화번호 안내원 이원숙(29.여)씨도 "전화국 민원을 114에 걸어와 따지는 사람, 반말을 해대는 사람, 술주정하는 사람 등도 많다"고 말했다.
영남인들의 목청 높이기는 외국인들에게도 유명하다.
대구YMCA 자원봉사자인 일본인 이시바시(35)씨는 "서울사람들을 접했을 때 대구사람들 목소리가 크다는 걸 새삼 알게됐다.
강하게 자기주장을 내세우면서도 상황을 차분하고 조리있게 표현하는 자세가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영남대 중어중문학과 공경신 교수(58)도 "경상도 사람 큰 목소리는 중국사람들에도 지지 않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공연장, 전시장 등 정숙을 지켜야하는 문화공간에서조차 최소한의 에티켓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구문화예술회관 기획공연담당 여상법(43)씨는 공연시간에 늦고도 입장을 시켜달라며 '우격다짐'을 부리는 관객들 때문에 공연때마다 골치를 썩는다.
"비싼 표 값을 내고 왔는데 왜 못들어가느냐" "시민을 위한 시설 아니냐" "차 막혀서 늦은게 내 책임이냐"며 언성을 높인다는 것. 그러면서도 자신때문에 다른 관객들이 느끼는 불편에 대해선 "그게 왜 내 탓이냐"고 나 몰라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대구가 문화도시가 되려면 공공장소에서의 에티켓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어른들의 나쁜 습관은 고스란히 아이들이 물려받는다.
대구시 수성구 ㄷ웅변학원 원장 장현자(44.여)씨는 20년전 고향인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왔을 때 '아이들이 왜 이렇게 별날까' 심각한 고민을 했다고 한다.
"대구 아이들은 유난히 말투가 거칠고 소란스러운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집중력이 떨어지고 주의가 산만하고 행동도 거칠어져요".
장 원장은 그 원인으로 학부모들을 지목했다.
아이들을 타이르고 이해를 구하려하기보다 먼저 윽박지르고 고함부터 지르면 아이들도 반발심에 목청을 높이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눈을 보면서 잘못과 벌을 받는 이유를 차근히 이해시키면 아이들은 대체로 수긍하죠. 가정내에서 그런 경험을 갖지 못한 아이들일수록 행동이 거칠고 목청까지 거세어 지는 것 같아요".
영남대 국어국문학과 오종갑 교수(57.방언학 전공)는 대구 사람들의 큰 목청을 선천적인 원인에서 찾았다.
"서울.경기도 표준어가 소리의 장단으로 뜻을 구분하는 데 비해, 영남권은 음의 고저까지 더합니다". 가령, 대구 사람은 눈(目)과 눈(雪)을 소리낼 때 눈(目)은 높고 짧게, 눈(雪)은 낮고 길게 발음하지만 표준어는 장단으로만 구분한다는 것.
경북대 사회학과 김규원 교수는 사회.문화적 분석을 내렸다.
"유교적 관습이 강한 영남인들은 남들과 비교하기보다 자신의 주체성과 입장을 더 중시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김 교수는 "특히 목청을 높이다보면 대화에 비약.축약이 많아지고, 타인과 커뮤니케이션을 나누는 기술이 떨어지게 된다"며 "자신의 목청을 줄이고 상대방의 말에 귀기울이는 것은 시민교양의 첫 덕목"이라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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