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규의 한방이야기-명절 보약선물

입력 2003-01-28 17:18:29

며칠 뒤면 대소가(大小家)의 친척들이 함께 모여 조상에게 예를 올리고 덕담을 나누며 인사를 하는 명절인 설이다.

설을 앞두고 가장 큰 고민거리의 하나가 선물. 고향을 떠나 있는 자식 입장에서 늙으신 부모님의 건강을 염려해 보약을 선물로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보약 선물은 말 그대로 부모님의 건강에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는 효성에서 비롯된 생각이지만 한의학적으로 볼 때는 몇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

보약을 단순히 건강식품으로 생각하는 점, 보약을 지을 때 한의사에게 환자를 직접 진찰받도록 하지 않는 점, 받은 보약을 서로 먹으라고 양보하는 점 등이다.

우선 보약을 단순한 건강식품으로 생각해 음식처럼 먹으면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은 잘못됐다.

체질과 증상에 관계없이 한약을 먹으면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또 한의사와 전화 상담을 통해 보약을 짓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역시 정확한 진단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의학에서 진단을 할 때 강조하는 사진(四診)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사진이란 보고, 듣고, 묻고, 만지는 네 가지의 진단법으로 두드러진 증상, 체격과 형상, 식습관, 목소리, 설태, 맥 등을 종합해 병증을 가리는 것이다.

이런 종합적인 진찰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정확한 처방이 어렵다.

마지막으로 보약을 서로 미루는 경우가 있다.

부모님들은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약을 양보하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오히려 아들, 며느리들에게 양보한다.

정겹기 그지없는 모습이지만 위험천만한 일이다.

체질과 증상, 나이와 성별에 맞는 않는 사람이 약을 먹으면 분명히 부작용이 생긴다.

이는 녹용과 같은 보약이 들어간 처방도 마찬가지. 녹용 이외의 다른 약재들이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 전체 처방의 효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약을 선물하려면 먹을 사람을 데리고 한의원을 찾아가야 한다.

명절 보약 선물 못지 않게 명절 이후 부모님들의 건강을 보살피는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명절 전에는 자식과 손자, 손녀들을 기다리는 기대로 인해 명절을 준비하는 고생을 참을 수 있지만 명절이 지나 모두들 떠나고 난 뒤 찾아오는 허전함과 허망함은 병이 될 수 있다.

명절 연휴가 끝난 뒤 부모님을 모시고 가까운 병·의원을 찾아가 진찰을 받게 해 드리자.

경산대 한의학과 교수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