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낮 구미시 공단동 한국전기초자(주) 제2공장. 박보근(43)씨 등 제품검사2팀 직원 3명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온 유리벌브 제품을 살피는데 여념이 없었다.
공기방울은 안 생겼는지, 이물질은 없는지 등 벌브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검사하는 이들의 눈은 매를 방불케 할 정도로 매서웠다.
경력이 5~18년인 박씨 등이 하루 검사하는 유리벌브는 약 6천개. 한 명당 2천개를 검사, 합격 여부를 판가름하고 있다.
육안 대신 기계로 검사 시스템을 바꾸기도 했으나 사람의 눈보다 못하다는 결론이 나와 육안검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박씨는 "일등제품 생산의 마무리 작업을 맡고 있다는 데 대해 책임감과 함께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한국전기초자는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알짜' 회사로 정평이 나 있다.
주요 생산품은 브라운관용 유리벌브. 호주에서 유리 원료인 규사를 수입, 이를 녹여 텔레비전 브라운관에 사용되는 유리(CPT)와 컴퓨터 모니터용 브라운관에 쓰이는 유리(CDT)를 만들어 내고 있다.
또 평면TV에 사용되는 완전평면유리(Flantron)도 생산하고 있다.
생산 제품은 삼성SDI, LG필립스 디스플레이 등에 납품하고 외국에 수출도 하고 있다.
종업원이 1천570여명에 불과하지만 지난 해 매출액은 6천300억원이나 됐다.
한 해 순이익이 1천억원을 넘고, 2년 연속 '무차입경영'을 실현한 초우량 업체다.
그러나 한국전기초자가 줄곧 '탄탄대로'를 달려온 것은 결코 아니었다.
회사 역사가 30년에 불과한데도 주인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한국유리에 속했던 한국전기초자는 1997년 대우그룹에 넘어갔다 1999년 다시 일본 아사히글라스에 인수됐다.
1996년까지만 해도 세계 4위의 브라운관 제조업체였던 한국전기초자는 1997년 6월 '사망진단'을 받았다.
부가가치가 낮은 TV브라운관용 유리벌브 생산에 치중한 데다 다른 업체들에 비해 불량률도 높아 경쟁력에서 뒤처졌던 것. 여기에다 같은 해 7월에는 77일간의 장기파업까지 벌어졌다.
매출 2천400억원에 손실 600억원, 부채비율 1천114%. 경영진단을 한 외국계 회사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회사의 문을 닫는 일만 남은 순간이었다.
이렇게 사망선고까지 받았던 한국전기초자는 98년 '구조조정의 전도사'로 불리던 서두칠 (64·이스텔시스템즈 사장) 전 사장이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하면서 회생의 계기를 찾았다.
취임 후 현장을 둘러본 서 전 사장은 "한 사람도 퇴사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자산매각이나 인력감축보다는 혁신을 위한 조직과 생산라인의 효율성을 제고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후 일자리를 줄이지 않는 대신 생산라인을 풀가동해 생산원가를 낮추고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노력이 이어졌다.
전 사원이 '2시간 조업, 10분 휴식'에 '365일 출근'을 했다.
노사는 임금협약도 4년 연속 한차례의 협상으로 체결했다.
그 결과 '기적처럼' 회사는 살아났다.
2001년 8월 사장에 취임한 박순효(66) 사장은 '복지경영'을 실현하는데 애쓰고 있다.
"적당히 쉬어야 능률도 오른다"며 일만 하던 임직원들의 근로환경에 손을 댔다.
간부들까지 휴일을 철저히 보장하고 사내 동아리에 대한 자금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0여개의 동아리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고, 직원들은 부부동반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평면 TV가 TV시장의 주력 상품으로 자리잡음에 따라 한국전기초자는 부가가치가 높은 완전평면유리 생산에 치중, 매출은 20%이상 증가했다.
이자보상배율(이자비용에 대한 영업이익의 비율)은 상장사 중 4번째일 정도로 회사 재무구조가 튼튼하다.
기획팀 손영복 과장은 "올해에는 환율 하락에다 대체 상품인 LCD·PDP등으로 인한 시장 쟁탈전 심화 등으로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C(China) 프로젝트 조사팀을 발족, 중국진출을 위한 시장 조사를 하는 등 세계적 초우량 업체가 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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