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상용차 퇴출 그후 2년

입력 2003-01-25 15:03:31

2000년 11월 삼성 상용차 퇴출 이후의 문제점은 여전히 한발짝도 진전되지 못한채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피해가 극심한 삼성 상용차 납품 전문업체를 포함한 지역의 협력업체들은 줄부도 사태를 면치 못했고, 대구시-삼성-대구상의간에 오가던 대체투자 문제도 전혀 진전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생사 기로에 선 협력업체

지난 23일 오후 대구 성서공단내 삼성상용차 모 협력업체의 앞마당에는 퇴출 이후 납품하지 못한 화물차 짐칸이 잔뜩 쌓여 있다.

"이곳에 쌓여있는 짐칸은 모두 6억 6천만원어치로 납품처를 잃은 제품을 볼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이 회사 관계자는 절규했다.

이 회사는 용접, 도색, 조립 등 각종 시설 투자비 107억8천만원 등을 합쳐 모두 121억 3천만원의 피해를 입었다.

삼성 상용차 협력업체 생존 비상대책위원회(=삼생회) 정일규 부회장은 "삼성 상용차가 차량 생산대수를 늘리는 등 투자를 확대한다는 말만 믿고 2000년 7월 40억원을 금융기관에서 대출해 회사를 설립했지만 퇴출조치로 4개월만에 공장문을 닫아, 그 피해는 말로 다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차해룡 삼생회원도 삼성 상용차 퇴출 이후 매월 700만원에 이르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6개월만에 부도를 냈다.

삼성 상용차 협력업체 가운데서도 전담 납품업체의 피해는 훨씬 더 큰데 삼성 상용차 전담 협력업체는 대구·경북지역에 가장 많은 7개 업체가 있다.

협력업체 피해액은 모두 1천388억원에 달하지만 삼성상용차 자산(부지와 생산기계 등)매각에 따른 실 보상액은 15억원에 불과할 것으로 보이나 시간이 지날수록 자산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삼성 상용차는 삼성 자동차 설립 희생양

삼성 상용차는 퇴출 직전까지 생산대수를 더 늘리겠다고 함으로써 협력업체들의 피해가 더 늘어나게 됐다.

삼성은 퇴출 2, 3개월전 1천500대 규모의 월 생산대수를 2천~2천500대로 늘린다고 약속했고 '원가절감운동'에 관한 공문을 각 협력업체들에게 보냈다.

삼생회 정규일 부회장은 "삼성은 상도덕의 기본인 진성어음 결제조차 거부했다.

협력업체를 이처럼 철저히 외면한 사례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윤상정 삼생회 사무국장은 "이건희 회장이 사재 2조원으로 삼성승용차 협력업체들의 피해는 최소화했지만 삼성 상용차는 나몰라라 했다"고 비판했다.

삼생회 측은 삼성이 자동차회사 설립허가를 위한 발판으로 상용차를 대구에 유치했고, 삼성 자동차가 부산에 들어서자 의도적으로 상용차 공장을 외면했다는 것.

◇진전 없는 대체투자설

삼성 상용차 퇴출 이후 그나마 논의되고 있는 대체투자. 문희갑 전 대구시장은 지난해 4월 삼성 이건희 회장, 이학수 구조조정 본부장 등을 만나 삼성 상용차 퇴출 이후 문제의 해법을 모색했다.

이때 삼성측은 별도의 문제 해결팀을 가동하고, 대구시와 공식 채널을 가동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아무런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문 전 시장은 협력업체의 진성어음 126억원 우선 보장, 삼성상용차 퇴출에 대한 대체투자로 전자, 정보, 통신 등 첨단 기술기반 제조업 위주의 집적화 단지 조성, 연구소 설립, 제일모직 후적지 중 업무단지(3만3천700평) 조기 개발 등을 공식요청했다.

하지만 조해녕 시장의 부임 이후 이 얘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삼성구조조정 본부 김윤식 상무는 "이와 관련된 얘기를 전해 들은 기억이 없다"며 "현 시점에서 고려되고 있는 대체투자도 없다"고 밝혔다.

◇삼성 상용차 매각 어떻게 됐나

삼성 상용차 퇴출 이후 매각 혹은 해외 매각설이 꾸준히 나돌았으나 성사되지 않고 있다.

성서공단내 최대 공간인 삼성 상용차 부지 18만2천평은 2년째 문을 닫은 채 방치되고 있다.

삼성 측은 정부가 계열사간 출자를 금지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삼성 이건희 회장이 사재 출연과 계열사 출자를 못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삼성 상용차는 주 채권단인 산업은행에만해도 1천억원의 빚을 안고 있다.

2000년 12월부터 협력업체 지원 및 삼성상용차 대체 투자 유도 등을 추진했던 대구시의회 삼성상용차특위의 경우 아무런 가시적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설치 6개월도 안돼 폐지됐다.

이에 대해 협력업체는 물론 대구 시민, 노동단체들도 협력업체의 피해보상을 위한 시스템 마련에 정부 및 시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이 삼성상용차의 일방적 퇴출을 단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2000년 11월 3일 정부의 대규모 구조조정 조치가 깔려 있고 당시 정부는 자동차산업의 특성을 무시, 일방적 퇴출 기준을 적용했다는 것.

대구시 한 공무원은 "본궤도에 오르려면 수십년이상 걸리는 자동차 산업을 단순히 몇년 적자만으로 퇴출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정부는 삼성이 회사 출범 당시 1조5천억원을 투자, 삼성상용차를 연 매출 2조원 규모로 키우기로 약속하고도 30~40%의 예산만 투자한 점 등을 퇴출 근거로 삼았다.

대구 시민단체들은 "온갖 특혜를 주고 삼성 상용차를 유치했던 대구시가 퇴출 이후의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은 민생을 외면하는 처사"라고 말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