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잡신의 나라

입력 2003-01-23 13:19:56

일본에 잠시 가있는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겨울을 지내기가 불편하다는 하소연 비슷한 투정을 들었다.

하긴 겨울이면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등짝을 지져야만 잠을 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마련인데 차가운 다다미에 온풍기를 틀어놓은 방이 불편한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그녀의 일본체험은 단순히 다다미방에만 국한되지 않은, 어딘가 아파트의 분위기가 어둡게 느껴져서 피로감을 갖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좀 별나고 예민한 성격인 친구가 까다롭기 그지없는 불만을 늘어놓고 있다고 무심하게 넘겨버렸지만 그 말의 꼬리에는 잡신들이 우글거려서라는 조심스런 어조가 섞여 있었다.

일본에는 예상외로 점을 치는 사람도 많고 이미 점을 치러 다니는 일은 젊은 여자 사이에도 보편화된 현상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발 빠른 서구화에도 불구하고 종교라든가 생활양식은 정체성을 넘어 오히려 과거지향적으로 회귀하는 듯이 여겨진다.

얼마 전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도 결국은 일본적인 것에 대한 우매한 고집에서 빚어진 황국적 신민사관에서 비롯되지 않았는지? 사회학에서는 그것을 문화침체라고 하던가? 문명의 속도는 빠르게 흘러가지만 사람의 정신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이론이다.

아무튼 일본은 히로시마 원폭 투하라는 쓰라린 경험을 하고도 정서적인 부분에서만큼은 여전히 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알고 보면 일본은 수많은 신사들이 산재한 잡신들의 나라라고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니다.

토속적인 신앙이기도 한 이 정령사상은 얼마 전에 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애니매이션 영화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가장 일본적이다"라는 평을 받았던 이 영화는 밤이 되면 신들의 세계로 변한 폐허가 된 놀이공원에서 수많은 신들을 만나며 인간세계로의 복귀를 꿈꾸게 된다.

일종의 판타지 이야기지만 사람과 흡사한 여러 종류의 잡신들을 절대적인 권위의 하느님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잡신들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인간 세상에 군림하면서 인간들의 냄새에 탐닉해서 자신들의 세력을 넓히고 싶어 하는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도 결국은 영토확장을 꿈꾸며 세계대전을 불러일으켰던 망령에 대한 일종의 향수이며 신들림이 아닐까?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본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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