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따라 세월따라-TV 대신했던 서커스단

입력 2003-01-21 09:26:55

가난했던 시절.

서커스단은 으레 요란하게 등장했다.

골목마다 누비는 삐에로의 북소리는 사람들의 가슴을 쿵쾅쿵쾅 때렸다.

'죽음의 공중곡예', '손에 땀을 쥐는 스릴과 스펙터클', '재미없었다면 입장료를 반환한다!'와 함께 '꼭 보시라!!!'는 포스터의 선전문구는 왜그리 크게 다가왔던지. 천막이 하늘 높이 세워질 무렵, '코 막힌' 변사의 잡음 섞인 확성기 소리에 저녁 밥상을 차리던 며느리는 울렁이는 가슴을 삭이느라 공연히 허둥댔다.

TV도 없고, 라디오도 귀했던 시절 서커스는 가난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한 유일한 볼거리였다.

7인 공중비행, 자전거 묘기, 신파극, 삐에로의 실수연발에 사람들은 울고 웃고했다.

머리 둘 달린 괴물 인간과 몸은 뱀이지만 머리는 여자인 사녀(蛇女)가 나온다고 해놓고 시커먼 천으로 가린 통만 보여줬지만, 모두 그러려니 했다.

그렇게 순박했던 시절이었다.

하양의 서커스 공연장. 'OO써커스' 아래 쓰인 '혁명과업완수'와 함께 '반공'이란 단어가 낯설다.

촬영연도가 1962년. 한창 어지럽고, 힘들고, 시끄럽던 때다.

입구를 빼곡히 막은 조무래기 뒤로 서커스 구경 나온 할머니의 마음이 급하다.

잰걸음이 처녀시절처럼 가볍다.

'누구나 100환 균일'이라 적힌 입장권 판매대, 그 앞을 가린 구멍난 쇠 비계가 아련한 추억 풍경이다.

곡예사의 첫사랑처럼 애틋하고 아련한 것이 서커스란 단어다.

사진:도봉준

글:김중기기자 filmt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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