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풍습.식생활 등 모든 문화가 다른 미지의 곳을 찾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설레임을 갖고 있다.
또 그만큼의 불안함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다.
사진작가, 교사,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등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는 필 쿠지노의 '성스러운 여행-순례이야기'(문학동네 펴냄, 1만2천원)는 미지의 곳에 대한 여행 안내서이다.
생후 2주부터 강보에 쌓여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했을 만큼 태생적인 방랑자를 자처하는 그의 이 안내서는 다른 글과 달리 독특한 양식을 취하고 있다.
'어느 곳에 가보니 어떻더라, 혹은 그 곳의 사람들과 문화는 이렇더라'하는 단순한 개인기행문이나 가볼만한 곳을 소개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지은이의 감상이나 견해, 혹은 그 곳의 문화이야기가 다뤄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기행문은 여행자 개인의 내면세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은이가 여행한 곳에 대해 일정한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나열되거나 특정한 장소, 특정한 문화가 조목조목 소개되는 것도 아니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시.공을 오가며, 어쩌면 혼란스러울 만큼 뒤섞여 있어 꼼꼼이 따라가야 그 가닥을 잡을 수 있을 정도다.
그는 여행의 단계를 7가지로 나누고 있다.
첫 단계는 '가슴속에서 대자연이 그토록 마음을 휘젓기에 사람들은 순례를 떠나고자 갈망한다'고 읊은 위대한 시인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싯귀처럼 낯선 곳으로 한 발 내딛게 하는 것은 자신의 열망과 믿음에 대해 그것을 증명하고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열망(Longing)'이다.
그리고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부름(Calling)', '출발(Departure)', '길(The Pilgrim's Way)' '미궁(Labyrinth)', '도착(Arrival)' '은혜로운 선물(Bringing Back The Boon)'로 이어진다.
이렇게 분류된 것은 여행이라는 것이 바로 자신을 찾아 한걸음씩 나아가는 순례의 길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여행 안내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외부적인 여행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찾아가는 안내서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첫 출발지는 동양의 밀림속에 숨겨진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리투아니아, 폴란드, 스페인, 인도네시아의 어느 곳을 마음 내키는 대로 들러 불쑥불쑥 말을 걸어온다.
인간 내면에 숨겨진,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을 부추기는 글들이다.
'길위에 서면 삶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밤중에 기적을 울리는 기차에 타고 싶은 환상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두번 죽는지도 몰라. 한 번은 우리의 심장이 멈추었을 때고 또 한 번은 삶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었을 때야'
삶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기 전에 한번 훌쩍 떠나볼 일이다.
정지화기자 jjhw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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