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브랜드'이렇게 키운다-귀뚜라미 보일러

입력 2003-01-20 17:32:17

지난 1991년 보일러 경기가 최고조였을 때 삼성, 대우, LG, 코오롱, 롯데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앞다퉈 보일러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은 하나둘씩 보일러사업을 포기해야만 했고 롯데도 현재 사업을 계

속해야 할지를 두고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지난 62년 창업한 이래 41년 동안 보일러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굳힌 경북 청도의 지역 기업' 귀뚜라미그룹(회장 최진민)의 주력사 귀뚜라미보일러(주)의 아성을 뛰어넘는데 실패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세계최대의 보일러기업','21세기 한국을 이끌고 갈 50대기업','건국50주년 50대 히트상품','4년 연속 브랜드파워 1위','국내 최우량 기업' 등 귀뚜라미그룹의 현주소를 나타내는 수식어는 화려하다.

수사만 찬란한 게 아니라 기술력과 브랜드파워, 재무구조 그리고 기업윤리 등 다방면에서 명실공히 일등기업이다.

귀뚜라미그룹의 생산공장은 보일러를 만드는 국내 5개 공장 및 중국 천진공장과 부품을 생산하는 귀뚜라미정밀공업(주), 귀뚜라미기계(주)가 있다.

귀뚜라미보일러는 연간 100만대 이상을 생산하는 세계 최대의 전문 중소기업으로 2002년말 현재 전국 시장 점유율은 60%를 넘어섰다.

국민소득 100달러가 채 되지 않던 40여년 전에 보일러 개발에 성공, 우리나라 난방문화를 바꿔가기 시작한 귀뚜라미는 80년대 중반 한때 시장점유율이 80%를 넘어선 적도 있다.

가스보일러 시장은 50%를 점유하고 있는데 경쟁업체들이 줄고 있어 시장점유율이 확대될 여지가 많다.

작지만 강한 기업, 강하지만 선한 기업 귀뚜라미그룹의 진가는 내실을 들여다보면 더 분명해진다.

전 계열사를 통틀어도 자기자본 비율이 80~90%여서 부채비율이 10% 안팎에 머물고 있고, 주력기업인 귀뚜라미보일러는 금융기관 차입금이 한푼도 없는 '무차입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계열사마다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천억원대까지 사내보유액을 갖고 있다.

부채비율이 200% 이내만 돼도 우량기업이라고 평가받는 국내업계 현실에서 초우량기업 그 자체다.

귀뚜라미그룹 창업주 최진민 회장은 대외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거나 겉치레를 싫어한다.

공장에서도 작업복차림으로 다니는 경우가 많아 외부손님이 몰라보고 돌아가는 경우가 잦다.

자신을 회장보다는 공학박사로 불리기를 좋아한다.

최 회장은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보일러 기술자이다보니 누구보다 기술개발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다.

보일러에 관한 저서만 일곱권을 냈다.

40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서구의 보일러기술을 능가하게 된 최 회장의 경영철학은 바로 '기술제일, 내실주의'. 15년전부터 회사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기술개발에만 몰두,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실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술개발의 일선에서 직원들과 고락을 함께하고 있다.

10년전부터 경영에 일절 간섭을 않을 뿐만 아니라 회사의 모든 공적과 홍보도 현장 CEO들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여 권위를 부리지 않아도 저절로 직원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최 회장은 일맛나는 직장을 만드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생산라인에 소사장제를 도입, 생산직원들이 실적에 따른 성과를 누리도록 했고 대리급 이상 직원들에게 골프채를 주고 연습 레슨비를 지원해준다.

이와 함께 모든 정규직원들을 순차적으로 부부동반 해외연수를 시켜주는 것은 물론 지식기반사회에 대비한 지식경영스쿨에 간부들이 다닐 수 있게끔 지원하고 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건설한 한탄강골프장은 수백억원의 개발이익이 보장돼 있는데도 회원제에서 퍼블릭으로 전환, 직원이나 협력업체 직원들이 세금만 내고 이용하면서 직원들의 건강이 바로 회사의 건강도로 직결되도록 배려했다.

현재 청도공장에는 체육관, 당구장, 직원용 대형 골프연습장이 들어서고 있다.

박진호 청도공장 생산부 부장은 "회사가 이렇게까지 해주기 때문에 부정부패가 있을 수 없고, 전직원이 세계 최일류브랜드를 생산한다는 각오로 일한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머리좋은 한국사람이 일할 맛나는 공장에서 똘똘 뭉치면 무엇이든 못해낼 것이 없다는 자부심이 귀뚜라미 공장의 기운을 이루고 있다.

귀뚜라미그룹은 기업규모에 비해 문화재단은 재벌급으로 운영한다.

지난 1984년 1억3천만원의 재산으로 출발한 귀뚜라미문화재단은 최 회장의 지속적인 출연으로 현재 자산이 1천114억원으로 불어나 있다.

공익재단의 자산규모 가운데 국내 6위. 이 재원으로 각종 장학금, 소년소녀가장 돕기, 기술지원사업을 다각도로 하고 있고 최근 개인사재 200여억원을 출연, 복지재단을 새로 만들 계획이다.

그야말로 기업도 사람처럼 인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기업시민정신'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아니다.

무려 560개의 발명특허와 지적소유권을 보유한 귀뚜라미는 99%의 국산화율을 달성했다.

부품국산화와 생산합리화로 원가를 절감, 지난 10여년간 보일러값을 동결했다.

열심히 귀뚜라미보일러를 써준 소비자들에게 기술개발의 덕을 되돌리는 길인 셈.

귀뚜라미보일러는 청도와 부천공장에 기술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청도공장은 120명의 기술직 직원 가운데 50명이 연구직으로 기술개발의 열의를 엿볼 수 있다.

귀뚜라미그룹의 연구조직은 정밀부품, 전자개발, 연소기개발, 보일러개발 등 4개 연구 파트로 나눠 최 회장이 진두지휘하고 있다.

귀뚜라미보일러가 히트를 친 것은 여러 기계장치를 통하나에 집어넣어 단순화 한 데 있다.

특수구조의 소용돌이 순환펌프를 보일러에 내장시켜 별도의 순환펌프를 구입하거나 설치할 필요가 없게 만든 것. 또 고장진단여부를 자가진단할 수 있는 고장진단램프도 기술연구소의 개가. 가스누출 수온조절 등 10여가지를 자가진단한다.

귀뚜라미보일러의 주력제품은 '거꾸로 타는 보일러'다.

일반 보일러는 버너가 하단부에 있어 불꽃이 한번만 열교환기를 통과하면 가열되지만 이 보일러는 버너가 상단부에 위치, 불꽃이 내려갈 때 한번, 올라갈 때도 한번 더 같은 열량으로 이중으로 데워주는 효과를 낳아 열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인 제품이다.

최근에 나온 원적외선을 이용해 각종 신진대사 촉진 및 건강증진효과가 있는 '건강난방기', 미용실 식당 등 온수를 많이 사용하는 업소에서 적정량의 온수를 사용할 수 있는 '저장식 전기온수기', '벽걸이형 전기컨벡터'와 '망사형 전기난로' 등도 기술연구소의 작품이다.

김성수 귀뚜라미기술연구소장은 "회장님이 누구보다 보일러 전문가이다보니 연구부문에 대한 투자가 확실하다"면서도 "직원들이 사활을 걸고 할 수밖에 없는 부담도 있다"고 말했다.

귀뚜라미그룹은 국내의 시장성장률이 한계에 다다른 만큼 90년대 후반부터 해외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14개국에 수출하고 있는 귀뚜라미의 경쟁력은 해외에서 진가를 나타내고 있다.

현재 보일러 시장의 주축인 중국, 러시아, 동구 등에서 유럽인증, 중국인증, 러시아인증을 받았고 기술선진국인 일본에서도 일본인증을 받을 만큼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귀뚜라미보일러는 해외 첫 생산기지로 1999년 중국에 청도공장을 완공했다.

뛰어난 기술력과 A/S망으로 천진공장은 지난해 중국 보일러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50개업체가 각축을 벌이고 있는 중국시장에서 성능이 우수하면서도 가격경쟁력에 앞서 2년만에 선두기업으로 올라선 것. 특히 경쟁사가 따라올 수 없는 A/S망으로 격차를 더 벌릴 기세다.

2006년까지 시장점유율 40%를 목표로 하고 있다.

최봉국기자 choibok@imaeil.com

이춘수기자 zap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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