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학문의 가치

입력 2003-01-17 11:32:02

얼마 전 외국에서 유학 중이던 사촌이 잠시 귀국했다.

이름있는 공대를 졸업한 그는 좋은 직장의 유혹도 뿌리치고 유학을 떠났었다.

어릴 때부터 영민하던 그의 유학을 나는 내심 기뻐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그의 휴대전화에 '부자가 되자'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깜찍한 여배우가 두 팔로 원을 그리며 외쳐대던 광고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처음에는 장난삼아 적어 놓은 것이려니 생각했는데 뜻밖에 그는 진지했다.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는 환경에서 자란 그의 포부를 나는 쉽게 납득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소외받는 사람에게 사랑을 전달하는 자선사업가 정도를 상상하며 뒷이야기를 기다렸다.

의외로 그는 유모차를 끌고 여유있게 호숫가를 산책하는 현지인의 삶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노라고 하였다.

부모의 도움없이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면 흡족하다는 거였다.

검소하고 진취적인 의식을 가진 그였기에 적잖이 실망하고 말았다.

눈만 뜨면 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우리의 정서에 진저리가 났을 만도 하다.

그러나 그토록 힘들게 공부한 이유가 육신의 풍족함을 누리기 위해서였다면 허무하지 않은가.

나는 그를 통해 우리 교육의 현실을 보았다.

부와 명예가 공존하는 일등이 목표가 된 삶. 치열하게 고민하고 아파해야 할 젊은 지성들은 적당히 타협하고 안주하기를 꿈꾼다.

해가 갈수록 가슴보다 머리를 비대시키는 책읽기가 만연해지고 있다.

뚜렷한 꿈도 없이 쌓아올린 지식은 쉽게 무너지는 법이다.

명석한 두뇌와 애써 쌓아올린 지식이 좀 더 보람있고 원대한 일에 쓰일 수는 없을까.

대나무가 아름다운 이유는 하늘을 찌를 듯한 곧은 기상과 푸르름 때문이다.

그렇지만 꽃을 피우고 나면 어김없이 생을 마감해야 하는 슬픈 운명을 지녔다.

튼실한 종자도 맺지 못하는 볼품없는 꽃.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대나무의 삶은 비극적이다.

나는 자라나는 세대들이 어떠한 역경에서도 꺾이지 않는 꿈과 열정을 가지기를 기대해 본다.

새들이 지저귀고 겨울바람이 쉬어가는 울창한 대숲 같은 존재가 되기를.

조낭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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