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그 현장-(3)음식

입력 2003-01-17 11:37:46

날아다니는 것 중엔 비행기, 네발 달린 것 중엔 탁자만 빼고는 뭐든지 요리할 수 있다는 중국. '모든 음식은 중국에 있다(食在中國)'는 말처럼 먹는 것에 관한한 세계 제일의 '음식지존'이라고 자신만만해 하는 중국에서 과연 한국음식은 어떻게 비쳐질까.

야채마저 기름에 볶아야 직성이 풀리는 볶음요리 위주의 식생활을 하는 중국인들에게는 짜고 매운 맛, 기름기가 적은 한국음식은 그다지 매력적인 맛은 아니었던 듯하다.

한국에 다녀온 중국인들이 흔히 "매운 음식 투성이라 도무지 먹을 게 없다" 라든지 "먹긴 먹었는데 기름기가 없어선지 먹은 것 같지가 않다"고들 말하는 것만 보더라도 그러한 것 같다.

그러나 최근 중국 대륙에서 부는 한류 바람은 음식분야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감지케 한다.

지난 90년대초부터 베이징(北京)에서 대형 음식점을 경영해오다 재작년부터 '파리 파티스리'라는 상표로 제과제빵분야로도 사업을 넓힌 교민 김천호(주 비선 대표)씨는 "10여년전만 해도 베이징의 한국식당은 진로주가·서라벌·두산주가·사이트아리랑 등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며 "당시엔 주로 대형 음식점뿐이었으나 지금은 중·소규모의 식당이 엄청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베이징 교민사회의 종합 생활정보지인 '한마을'에 실린 한국 음식점은 2002년 12월 현재 140 여개소. 숯불갈비·비빔밥 등 한식점이 가장 많지만 횟집·족발집·매운탕집·설렁탕집·치킨점·떡집·피자점·뷔페식당·도시락점·보신탕집 등으로 갈수록 전문화·세분화되는 추세다.

또한 과거 한국인들이 주고객이던 데서 점차 중국인과 기타 외국인들로 범위가 다양화되고 있다.

지난 연말, 베이징의 고급 상가인 옌샤(燕沙) 백화점 지하의 '서라벌'. 중국내 한국음식점의 대표 주자인 이 식당은 어느 날이랄 것 없이 식사시간마다 늘 손님들로 가득 찬다.

서라벌의 2호 분점으로 베이징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 중 하나다.

이곳의 양방열 지배인은 "식사시간이면 600 여석의 자리가 꽉 차는 것은 물론 두 번 이상 자리가 순환됩니다"라고 말했다.

얼마전 베이징의 석간 베이징 완빠오(北京晩報)에는 중국인의 47%가 식사비로 한 끼당 평균 2~6위안(한화 300~900원) 정도만 쓴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동네의 웬만한 식당에서도 10, 20위안 정도로 충분히 식사할 수 있지만 서라벌과 같은 고급 한국식당에서는 갈비구이만 해도 1인당 100위안 내외의 가격대로 크게 차이가 난다.

양 지배인은 "서라벌 경우 한 사람당 평균 180~200위안을 쓴다"면서 "그래도 고객의 80% 정도는 한 주에 여러차례 오는 단골들"이라고 말했다.

아내·딸과 함께 점심으로 갈비구이와 국수전골을 먹고 있던 쩡(鄭)이라는 성의 한 30대 남자. 개인사업을 한다는 그는 호주머니사정이 꽤 괜찮은 듯 이렇게 말했다.

"한 달에 적어도 두 번 정도는 여길 와요. 음식이 맛있어요. 가격이 많이 비싸지만 뭐, 제겐 별 부담이 되지는 않아요"라고 말했다.

베이징 시내 위양(漁洋)호텔 근처의 한국식당 '동원'은 규모는 자그마해도 한국 가정에서 먹는 음식 그대로를 내놓는 것이 특징. 한국인들이 많이 찾지만 중국인 고객들도 절반 이상 된다.

대구출신으로 10년전부터 베이징에서 무역업을 하면서 지난 96년 음식점을 개업한 김성규 사장은 "요즘은 중국인들도 한국음식을 자주 먹어봐서 맛을 볼 줄 안다"고 말했다.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늘어나면서 재미나는 현상들도 나타나고 있다.

베이징 옌샹(燕翔)호텔내 한국식당 '화춘옥'에서 식사하던 한 중국인 남자는 생야채를 먹지않는 여느 중국인과 달리 당근·오이 등 야채를 날것으로 먹고 있었다.

칭화(淸華)대 유학생인 최낙섭씨는"생야채를 잘 먹는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일반 중국인과는 다른 계층이라는 걸 은연중 과시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대학촌인 우다오커우(五道口) 거리의 어언문화대학 근처 골목길엔 최근 한글로 '붕어빵'이라고 써붙인 풀빵리어카가 나타났다.

익숙하게 풀빵을 구워내던 젊은 주인은 "한국으로 일하러 갔던 친구가 붕어빵 기개를 사왔어요"라고 했다.

한 개 1 위안(150원). 출근길 거리에서 콩국으로 2~3위안이면 간단히 아침식사를 때울 수 있는 데 비해 비싼 편. 잘 팔리느냐고 물으니 "하이 커이(還可以:그런대로 괜찮다)"라고 답했다.

또 음식배달을 하지 않는 중국식당들과 달리 배달을 하며 서비스를 강조하는 식당들도 있다.

한국음식에 대한 중국인들의 반응은 대체로"맵다"는 것. 그러나 이상하게도 몇 번 먹다보면 맛을 들여 자주 한국식당을 찾게 된다고 했다.

베이징 변두리 화쟈띠(花家地)의 사회과학원 연구생원 근처 한국식당에서 마주친 19세의 통따(仝達)라는 한 대학생은 "가끔씩 한찬(韓餐)을 먹는데 맛있더라구요"라며 뜨거운 된장찌개를 후후거리며 먹고 있었다.

세계 제일의 맛있는 요리를 자랑하는 중국 대륙에서 한국음식을 통한 한류의 기세는 만만치않다.

많은 중국인들이 한국 대중가요나 드라마의 열풍 속에 이국적인 미각의 한국음식을 즐기고 있다.

그러나 셀 수도 없이 다양한 중국음식에 비해 한국음식은 너무 단조로운 것이 단점.

중국식당들이 뚱뻬이(東北)식이니 쓰촨(四川), 꽝뚱(廣東), 상하이(上海)식이니 하여 지역별 다채로운 풍미의 음식을 내놓는데 비해 한국식당은 가격은 비싼데도 그런 미각의 차별화가 돼있지 못한 점이 최대의 난제다.

"한국식당은 어디나 메뉴가 비슷비슷하여 그맛이 그맛인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 김천호 사장은 "중국에서 음식한류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중국인 고객들이 식상하지 않도록 부단히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경옥기자 sirius@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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