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와 정부부처간의 갈등이 적지않은가 보다.
개혁과 저항으로 이분되는 것을 경계하는 눈치지만, 여성정책을 둘러싼 그간의 경험으로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고위직 관료는 통상 정책과정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정책결정자가 수립한 정책목표를 달성할 기술적 수단을 개발하며, 때로는 정책결정자의 추상적이고 모호한 정책목표를 구체화하는 역할을 맡는다.
더 나아가 정책목표를 수립하고 이를 달성할 정책수단을 개발해 정책결정자로 하여금 해당 정책목표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적극적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고위직 관료의 역할이 여성정책에 있어서는 별로 발휘되지 못했다.
고위직 관료 자신들이 여성문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최고지도자가 여성정책에 대한 적극적 의지를 가진 경우조차 이를 지원하기는커녕 오히려 정책의 결정 및 실행에 저항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권위주의정권 시절이 생각난다.
당시의 관료들은 '남녀평등'이라는 말조차 불쾌하게 생각하며 남녀평등이 들어간 정책목표는 몽땅 '여성의 지위향상'으로 고쳐버렸다.
그 시절의 폐쇄적인 관료조직과 관료들의 가부장적 의식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오금이 저린다.
이후 남녀평등 실현이라는 정책목표가 선언적 의미로라도 조금씩 사용되기 시작하는 변화가 일기 시작해, 90년대 들어서면서 상황은 무척 달라졌다.
군사정권이 종식되고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관료제 내부에서도 개혁의지를 가진 고위엘리트층이 형성되었다.
여성운동 또한 사회민주화를 위한 하위운동으로서의 성격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여성문제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이들 엘리트관료층과 진보적 여성운동 세력이 결합해 남녀평등이라는 정책목표를 실현하는 구체적 정책과 프로그램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DJ 정부가 출범하면서 명실공히 남녀평등의 구체적 수단과 방법을 마련하는 단계로 이행했다.
이에 따라 우선적으로 여성부가 신설되고 6개부처 여성정책담당관실이 만들어졌다.
그 못지 않게 주목해야 할 점이 이들 여성행정기구의 고위직 관료들이 주로 공직 외부로부터 충원됐다는 사실이다.
결국 고위직 관료의 저항을 외부 전문가로의 물갈이로 해결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간 여성분야에서는 많은 법과 제도들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러한 정책의 내실 여부를 기준으로 하면 그리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무엇보다 여성분야에서 관료제 내부를 설득하는 데 많은 투자를 하지 못했다는 반성을 지울 수 없다.
이제 노당선자가 이끄는 새로운 정부에는 여성정책의 실효를 위해 말뿐이 아닌 실질적 경제적 투자가 요구된다.
어느 때보다 관료제 내부의 동의와 협력이 필요한 것이다.
남녀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 관료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의식의 변화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양승주(경북여성정책개발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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