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대학 신입생 '구걸'

입력 2003-01-14 19:10:54

지난해 프랑스의 제빵업자인 리오넬 푸아렌이 헬기 사고로 사망하자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르몽드'를 비롯한 언론들은 다투어 추모 특집을 마련했고, 장 피에르 라파랭 총리는 애도하는 성명을 발표할 정도였다.

그가 경영하던 빵집에는 추모 행렬이 끊이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는 생전에 '빵은 문명의 정수'라고 했다지만, 빵의 명장이었음에 틀림없다.

우리 사회도 이젠 모든 분야에 명장을 요구한다.

자신의 적성과 특기에 따라 자기 분야를 풍요롭게 일군 전문가들이 곳곳에서 빛날 때 국가경쟁력도 부쩍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학 경쟁력은 부끄럽게도 세계에서 하위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194개 4년제 대학과 159개 전문대가 있으나 '백화점식'으로 다양한 학과를 두루 포괄, 특성 없는 운영을 해 온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대학 정원은 73만명이나 수능 응시자는 67만명이라는 올해 첫 '대입 정원 역전 시대'를 맞아 뒤늦게 특성화를 서두르는 등 살아남기 비상등이 켜졌다.

▲지방대의 위기감은 갈수록 심각하고 수도권의 일부 대학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교육 당국은 이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공급 과잉을 불렀으며, 대학들도 내실화보다 몸집 키우기에 급급한 결과다.

이제 전문대들은 교수들이 고교를 돌며 유치 활동을 벌이는가 하면, 인기 학과 신설과 3년제 전환, 교육 내용 특성화 등으로 대책 마련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원서를 마감한 학교의 경우 지원자가 한 명도 없는 학과마저 속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정은 대구.경북 지역이 전국에서 가장 심각한 모양이다.

4년제와 전문대의 입학 정원이 10만여명에 이르지만, 수험생은 6만여명에 불과해 타지역 학생들이 대거 몰려오지 않는 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경북의 한 전문대 교수는 '학교에서 교수 1명당 150장의 원서를 확보하라'고 강요(?)해 수능 시험이 끝난 뒤 지금까지 전국을 돌며 하루에 4, 5개 고교를 찾아다니고 있다는 기사도 보이지만,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한심하다.

▲연구나 강의에 열중해야 할 교수들이 고교와 입시 학원을 찾아다니는 '구걸식' 세일즈에 강제 동원된다면 곤란하다.

더구나 목표가 할당돼 실적이 저조하면 승진.보직에서 불이익이 주어질 뿐 아니라 퇴출 위험성마저 감수해야 하는 풍토라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신입생 유치 경쟁을 나무랄 일은 아닐는지 모르나, 알맹이 없는 세일즈는 오히려 악순환만 부를는지도 모른다.

교수들이 제자리를 지키고, 대학은 시대에 부응하는 특화로 '상품성'을 높여나가야 하지 않을까.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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