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기자'와 네티즌들

입력 2003-01-13 10:05:39

모택동의 공산당 시절 당 선전 기관지였던 인민일보(人民日報)는 중국 전역에 기 자증 없는 속칭 '맨발의 기자'라는 300여만명의 여론수집꾼들을 거느렸다. 이들은 전국 곳곳에서 지역의 정치적 정보사항이나 주민동향 및 사건, 뒷얘기 등 갖가지 여론을 경쟁적으로 보내왔다.

본사에는 이들 맨발의 기자들이 보내오는 엄청난 양의 여론과 정보들을 분류 정리 , 보도하는 전담부서를 둬야했을 정도로 정보량이 폭주했다. 전문기자 교육도 받 지않고 자격증도 보수도 없이 맨발로 뛰면서 정보를 캐고 다녔다는 뜻에서 '맨발 의 기자'라는 별칭을 붙인 이들 여론몰이꾼들은 한마디로 신문지면에 이름이나 얼 굴을 드러내지 않은채 떼거리 여론을 만들어 내면서 사회를 집단최면시키는 여론 선전꾼 역할을 했다.

정보교류의 순기능보다는 정치적 역기능이 더 컸던 것이다. 요즘 대선이 끝난뒤 인터넷에는 얼굴도 없고 실명도 분명찮은 투명인간 같은 일부 네티즌들의 국론분열에 가까운 수준의 이념공방이 갈수록 도를 넘고있다.

친 노 무현측 네티즌들과 반 노무현측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상호 치고받는 논쟁은 기본 이고 언론사의 사설이나 기사에까지 노무현 그룹을 비판.지지한 글에는 글꼬리를 잡고 시비를 거는 사례도 빈번하다.

간혹 귀담아 들을만한 좋은 충고도 있지만 내 맘에 안드는 주장이나 의견은 철저 히 깔아뭉개야 직성이 풀리는 듯한 전투적이고 호전적 사고가 팽만해있는 시비도 적지않다. 나의 정치사상과 이념, 가치관만이 절대선(善)이고 정의라는 독선에 찬 아집을 여론이란 허울로 또는 표현의 자유라는 방패로 삼아 나와 의견을 달리하 는자의 여론이나 표현의 자유를 묵살하고 짓밟으려든다.

통합과 개혁을 지향하는 사회에 요구되는 여론이란 어둠속에 얼굴을 가리고 변조 된 음성으로 떠들어대는 떼거리 시비나 구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목소리가 크 고 떼거리 숫자가 많다고 그것이 곧 정의롭고 절대적 선이며 더 정당한 여론이라 고 우겨서는 안된다.

작은 목소리, 한두명의 의견이라도 떼거리 여론보다 더 정의 롭고 정당한 여론이 될 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 해주는 것 또 그런 토양과 분위 기를 만들고 조장하는 것이야말로 여론정치의 기초적인 전제조건이다.

언론자유의 신봉자였던 존 스튜어트 밀은 140여년전 그의 60페이지짜리 '자유론' 에서 오늘날 우리 한국의 네티즌들과 특히 정권 인수위 사람들이 귀담아 들을 만 한 명언을 남겼다. '모든 사람이 한가지 의견을 가지고 있고 오직 한사람만이 반 대되는 의견을 가지고 있을때 그 한사람이 힘이 있다고 해서 나머지 모든 사람을 침묵시키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없는것 처럼 모든 사람이 그 한사람을 침묵 시키는 것도 정당화 될 수 없다'.

그는 여론의 '압력'이 결과적으로 사회를 순응자들의 사회로 만들 가능성이 있고 순응(또는 복종)은 사회를 무지하게 만든다고 보았다. 인수위가 출범 이후 검찰, 행정부처, 공정거래위 등 정부기관과 계속 마찰을 빚고있는 가운데 노동부 업무보 고 회의장에서는 민주노총 산하기구 출신인 한 인수위원이 노동부측이 자기의견과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는 이유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누가 반대의견만 내놓으면 떼지어 달려들어 공격해대는 네티즌의 행태와 배타적 면에서 는 흡사하다. 어느 전경련 인사는 '인수위의 목표는 사회주의다'는 발언으로 책임 공방이 뜨겁다.

대선 이후 부쩍 늘어난 이런 적대적 분위기들이 과연 새정부 출범 을 앞두고 얼마나 많은 국민들의 사랑과 평안한 신뢰를 얻어낼까를 생각해 보면 암울하기까지하다.

감사원에 언론사 과징금 취소 특별감사를 청구한 인수위가 '네티즌들의 요구가 있 어서 감사청구를 했다'고 답변한 보도에서는 이 사람들이 이 나라에 국민은 네티 즌밖에 없는줄 착각하고 있는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근거리에서 설치는 네티즌들만이 국민이 아니다.

절대 다수 네티즌들은 투쟁적인 논쟁보다 새 지도 자 그룹이 '국민들의 공감'속에 '합리적 개혁'을 '겸허한 자세'로 강하게 추진해 내느냐 못하느냐를 냉정하게 관망하고 있다. 말없는 건전한 네티즌들, 그리고 컴 맹세대의 조용한 침묵이야말로 진정한 여론임을 알아야 한다.

국사(國事)가 호전적 소수 네티즌의 떼거리 여론이나 남의 의견을 존중 못하는 과 격 인수위원 몇몇에게 끌려다닌데서야 개혁정부라 할 수 있겠는가. 네티즌 여론은 건전해야하고 건전한 네티즌 여론 형성을 위해서는 네티즌들의 여론이 정치적으 로 이용되지 않아야 한다.

모택동이 맨발의 기자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듯 네티즌의 여론을 국정감사 청구같은 정치적 빌미로나 이용하려들면 건전한 다수 네티즌들 은 어느날 갑자기 그들로부터 등을 돌리게 돼 있다. 어제 노 당선자가 인수위에게 상대의견을 존중하라고 충고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金廷吉(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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