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라이프-대구 카피라이트클럽

입력 2003-01-10 18:35:59

흔히 광고는 '자본주의 꽃'으로 불린다.

현대 비즈니스에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소비자들의 눈과 귀에 확 띄는 광고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인재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기업의 사활이 걸린 광고전(廣告戰)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를 꼽으라면 단연 '카피(copy·광고 원고)'가 첫 손가락에 든다.

그래서 카피(광고 원고)를 '광고의 꽃'으로 부른다.

소비자들의 심리를 정확히 파악해 상품의 성능과 기업 이미지, 대중의 라이프스타일 등을 근거로 판매를 촉진시키고 기업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작업을 펴는 카피라이터. 대구카피라이터클럽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카피라이터들의 친목단체로 열악한 지역 광고 환경 속에서 광고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부자되세요'(BC카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KT) '너희가 게 맛을 알아'(롯데리아)….

최근 시중에서 유행했던 카피들이다.

대중매체를 통해 소비자들의 귀를 즐겁게 한 이들 카피들은 바로 카피라이터들이 머리를 싸맨 끝에 세상에 선보인 창작의 산물. 많은 사람들의 입을 타고 마치 유행처럼 널리 퍼져 유명해지면서 상품 매출에 크게 기여하기도 하고 때로 기업 이미지 제고에 한몫하기도 한다.

게다가 카피라는 본래 의미를 떠나 시대와 사회상을 반영하는 슬로건으로 패러디되는 등 카피의 파장과 영향력은 그 어느 때보다 큰 게 요즘 현실이다.

좋은 카피는 비록 짧은 문장이지만 재치와 기발함, 아이디어가 번득인다.

때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뛰어난 감각이 녹아 있다.

카피라이터들은 이런 예민한 감각을 기르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광고계에서는 '카피라이터 1년은 디자이너 3년'이라는 말이 통할 정도로 카피의 세계는 힘들다는게 중론. 우리 주변에 산소처럼 가까이 있으면서도 카피라이터의 속사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구카피라이터클럽의 시작은 지난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피'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때다.

학창시절 광고 특히 카피에 관심을 가졌던 몇몇 젊은이들이 지역 광고대행사에 몸담고 활동하면서 소비자와 광고주들에게 카피에 대한 인식을 막 심어가고 있던 무렵이었다.

지역 카피라이터 1세대인 조두석(40·애드메이저 대표)씨를 중심으로 카피라이터들이 모여 카피클럽을 결성했다.

몇 안되는 회원들이었지만 서로 자주 만나 통음(痛飮)하면서 국내외 이런저런 광고이야기를 화제로 시름을 달랬다.

카피클럽이 지역 광고계에서 재미있는 모임으로 조금씩 알려지면서 주변을 기웃거리던 디자이너 등 다른 분야의 광고인들이 클럽에 가세해 규모도 커졌다.

하지만 회원들간 카피라는 공통분모가 빠지게 되고 90년대 중반들면서 경기 침체에 따른 광고계의 위축 등으로 활동 열기가 시들해지면서 한동안 클럽활동이 중단됐다.

이 사이 회원들은 타지 여기저기로 자리를 이동하거나 현업을 떠나기도 했다.

IMF 한파로 많은 지역 광고회사들이 부도를 맞고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다.

흩어졌던 카피라이터들이 1999년 다시 모였다.

신출내기 카피라이터는 물론 카피라이터 출신 중견 광고인까지 대구지역 광고 일선에서 뛰고 있는 카피라이터들이 광고문화 발전을 모토로 재결합했다.

회원은 30여명. 광고계에 입문한지 채 5년이 안된 카피라이터들이 대다수지만 10년 넘는 중견들도 기꺼이 참여해 그동안의 공백을 메웠다.

80년대 후반 클럽 창립때부터 활동해온 강정영(대백기획 국장)씨는 "카피라이터에 대한 인식이 많이 높아지면서 일에 대한 자부심도 높아졌다"며 "하지만 지역광고계의 영세성, 광고에 대한 인식 등 문제점도 여전하다"고 말했다.

그는 "카피는 한마디로 고통"이라며 좋은 카피를 창작하기 위한 카피라이터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런 고통 속에서 만들어진 카피들이 모두 히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

'세월은 돌이킬 수 없지만 소리는 돌이킬 수 있습니다'(세기보청기)라는 카피가 그 한 사례다.

제법 좋은 카피로 지역광고계에서 평가받았지만 워낙 매체를 통한 노출량(광고회수)이 적었던 탓에 크게 빛을 보지 못한 케이스다.

회원 이경우(굿모닝애드 대표)씨는 "현장을 직접 뛰어다니며 일일이 확인한 후 카피를 만들어내지만 전파를 탄지 얼마되지 않아 중단돼 사장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광고의 지속성과 일관성 측면에서 지역 광고계의 열악한 환경을 지적했다.

사전심의도 문제다.

실무자들은 멋진 카피라고 생각하지만 소비자 오해와 과장광고, 외래어 등을 이유로 광고심의에 걸려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

이같은 표현의 자유를 임의적인 잣대로 규제하는 것은 우리 광고문화 발전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회원들은 입을 모았다.

대구지역에 체계적인 광고교육기관이 없다는 점도 애로점이다.

대구 경북의 몇몇 대학에서 광고학을 가르치지만 제대로 광고실무를 배우려면 서울까지 가야하는 등 고충이 많다.

조두석 회장은 "현대 홍보전에서 다양한 경험과 전문성을 가진 카피라이터들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며 "광고의 순기능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형화된 틀이 깨지고 심지어 도발적이고 파격으로까지 이어지는 광고계에서 카피라이터들의 머리카락 수가 점점 적어지지만 대구지역 광고문화를 한단계 업그레이드하려는 대구카피라이터클럽 회원들의 자부심은 여전하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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