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구텐베르그 변화

입력 2003-01-09 20:35:20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역사는 가정(假定)이 없다지만 우리나라 언론발달사를 바라보면 안타까움이 있다.

금속활자의 발명과 인쇄술, 민간인들이 발행한 조선시대의 조보(朝報)가 바로 그것이다.

민초(民草)들의 삶에 기능했다면 우리민족의 역동성이 세계사에 큰 부분을 차지했을 것이라는 꿈같은 얘기다.

우리는 늘 금속활자·인쇄술을 떠올릴적마다 세계최초 발명 민족이라는 식의 반응에 익숙해 있다.

고려때의 금속활자가 요하네스 구텐베르그의 그것보다 200년정도 앞선 것으로 세계를 향해 주장하고 있고 서양의 일부 문헌에서도 이를 인정하는 경우가 있다.

이 논쟁은 어떻게 보면 큰 의미가 없다.

우리의 금속활자는 국가의 전유물로 권력계층을 위한 책간행이었지 서민들의 삶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쪽으로 사용한 반면 구텐베르그의 금속활자와 활판(活版)인쇄술은 서양 보통사람의 삶과 문화에 영향을 미쳤다.

정보의 대량생산에 대량지식 보급 가능성을 열었고 현재의 정보통신혁명의 밑바탕이 됐다는 평가도 받는다.

매스미디어의 시원(始源)도 우리의 금속활자가 아니라 구텐베르그의 인쇄기에서 찾는다.

구텐베르그의 인쇄기를 지난 1천년동안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발명품으로 선정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용기(容器)는 만들었으되 기능을 효과적으로 활용못한 경우다.

민간인 조보발행이 계속됐다면 임진왜란 대처방식 등 전쟁수행과정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1577년(선조 10년)에 조정의 조보를 본떠 민간인들이 조보를 만들었다고 한다.

요새로 쳐도 신문형태를 갖추었다.

날마다 발행했었고 받아보는 독자들에게 돈(구독료)을 받았다니 민간신문의 성격이 아닌가. 결국 임금 선조에게 알려져 관련자 30여명이 1578년에 귀양을 가고 대사헌(大司憲), 대사간(大司諫)이 인책사직하는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은 막을 내렸다.

임진왜란 14년전의 일이다.

2002년은 한국언론사라는 큰 틀을 놓고 봐도 큰 변화가 온 한해로 분석할 수 있다.

앞으로 학자들의 연구가 기대되는 것이지만 인터넷이 사회를 바꾸는 매체로 등장했다.

기존의 언론 즉 신문이나 TV·라디오가 대안언론정도로 치부해온 '인터넷 언론'에게 자리를 내준 해로 기록될 것이다.

인터넷의 쌍방향, 심층성, 신속성에 눌렸다.

이의 핵심 주역은 젊은 세대다.

사회참여를 강요 받기만 하던 '2030'세대들이 사회변화를 추구하고 변화하는 주역 세대로 떠올라 기존의 질서를 바꿔 놓기 시작한 것이다.

오프라인(off line)언론에 실망한 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21세기 한국'을 재편하는 작업에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

젊은세대의 움직임을 예측 못하고 한나라당은 '숨은 8% 유권자'에 매달려 따놓은 집권이라는 단꿈에 취해 있었고 '5060'세대, 특히 영남인들은 충격을 떨치지 못했다.

단순한 정치적 행위인 대선결과를 두고 일부에서는 '좌절'이라는 용어 선택까지 할 정도다.

특정정당의 패배가 어느 지역의 좌절로 대표되는 일은 무리한 일이고 그렇게 돼서도 안되는 일이다.

미래에 대한 준비는 변화에 순응(順應)이 아닌가. 의지없이 풀처럼 눕자는 얘기가 아니라 가능성에 대한 또다른 도전을 향해 서야 한다.

2002년으로 다시 돌아오면 '수평(水平)커뮤니케이션의 폭발'이 특징이다.

기존 언론이 뉴스가치를 재단(裁斷)하고 잣대로 배열한 편집에 젊은세대들이 순응하지 않았다는 판단이나 반성도 나올법한 상황이었다.

인터넷은 제어가 별로 없고 즉각 반응할 수 있는 쌍방향 대화도 가능하기 때문에 '수평매체'다.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한 '2030'세대가 현실문제에 자발적인 주역으로 떠오른 지금, 일방대화 송출(送出)과 수신(受信)방식에 익숙한 기존언론의 선택은 가치판단의 재정립이 아닌가싶다.

뉴미디어가 합리성 우위라는 이분적(二分的) 사고에 매달린 것은 아니다.

언론계가 뼈를 깎는 자기 혁신(革新)이 없으면 밖으로 부터의 개혁(改革)요구에 몸살을 앓을지도 모른다.

사회동력(動力)에 맞추고 스스로 몸 낮추는 자기성찰(省察)로 거듭나야 한다.

신문시장 혼란을 두고도 말들이 많다.

불공정하고 불법이 난무해도 모양새만 갖춘 자율규제로 밀어둔 상태다.

과징금도 언론계의 짐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언론사에 과징금을 물렸던 결정을 취소한 동인(動因)이 언론사들의 로비였다면 국민들로부터 또다른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파트특혜, 언론사주 해외도박 등이 부끄럽다.

기득권세력에서 내려와야 신뢰회복이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변화를 외면하면 도태되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언론이 도구적(道具的)기능만 할 경우 그 사회는 가치 혼란한 사회다.

무엇보다 진실한 자기개혁이 바로 생존전략이 아닌가.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