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숙칼럼-꿈★은 이루어진다

입력 2003-01-08 16:01:27

아주 어렸을 적엔 내 꿈이 무엇이었는지 생각나지 않고 철들고 소녀가 되면서 나의 꿈은 우습게도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었다.

여고시절 친구들끼리 주고 받은 하늘색 사인지에 적힌 나의 희망은 오로지 '현모양처'였었다.

외지로 떠도는 아버지는 우리들에겐 늘 낯선 손님 같았고 어머니 혼자 애면글면 우리 삼남매를 키우셨던 집안 사정이 나에게 현모양처를 꿈꾸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나는 그저 자상하고 따뜻한 남자 만나 결혼을 하고 창마다 분홍빛 커튼을 달고 예쁜 앞치마 입고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여 놓고 퇴근 해 올 남편을 기다리면서 아이들 예쁘게 키우는 꿈 외에는 꾸어보지 않은 채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고 그래서 미련없이 대학도 중퇴하고 말았다.

그런데 살아 보니까 내가 꿈꾸던 결혼 생활과 현실의 결혼은 엄청나게 차이가 났고 가난은 사랑도 무색하게 만들었다.

개성 강한 남편 밑에서 어린 신부는 잔뜩 주눅이 들었다.

꿈꾸던 '현모양처' 노릇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란걸 깨달으면서 때때로 절망하고 그러면서 꿈도 조금씩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또 새로운 꿈을 만들었고 그래서 연극을 시작했다.

"옛날에 꿈이 있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비록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내게 그런 꿈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요즘 내가 연습하고 있는 연극 '매디슨 카운티의 추억'이라는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 킨 케이드가 사랑하는 여자 프란체스카에게 하는 말이다.

사람에게 꿈이 없다면 그 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때때로 생각해 본다.

젊어서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조금씩 그 꿈을 수정하기도 하고 또 가끔은 바꾸기도 하면서 죽는 날까지 꿈을 버리지 않는 게 아닐까.

따져보면 어린시절 꿈꾸던 삶을 그대로 살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도 열심히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다 보면 우리는 이만큼 꿈 근처에 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작년 6월! 그러고 보니 벌써 그게 작년이네-.

그 응원 열기속에 느닷없이 경기장 가득 펼쳐지던 글귀 '꿈★은 이루어진다'는 온 국민을 한꺼번에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지 않았던가-.

그때 우리는 실제 우리가 꾸던 '꿈'이 이루어지는 걸 실감했고, 함께 겪었고, 그래서 우리는 함께 소리치고 함께 울었다.

우리가 꾸는 꿈은 하나도 이루어 지는 게 없다는 오랜 절망감 속에서 비로소 우리는 벗어 날 수 있었고 그 자신감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제 우리는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는 자신감과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제 새로운 한해가 시작됐다.

다시 우리는 함께, 또 각자 아름다운 꿈 하나씩을 꾸자.

남북이 통일되는 꿈, 경제가 활성화 되는 꿈, 노사가 하나되는 꿈, 부-자 되는 꿈. 더불어 모두 함께 잘사는 꿈들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작년 6월처럼 손에 손을 잡자.

꿈은 이루어지니까-.

나는 2월에 막 올리는 내 연극에 관객들이 매일 매일 몰려오는 꿈을 꾸면서 오늘도 연습장에서 열심히 땀 흘리고 있다.

〈연극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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