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구조를 살펴보면, 인간의 신체구조와 거의 흡사하게 설계되어 있다 . 반야심경에 명시된 6근(根) 즉,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기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는 첨단 로봇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이렇듯 인간의 일정 역할을 대행하는 문명의 이기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먹고 배설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에너지 자원을 고갈시키고 대기를 오염시켜 지구를 병들게 하는 요인이 되는 것도 사필귀정이다.
게다가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는 환경파괴는 물론 소중한 인명과 재산을 앗아가는 주범으로도 등장했다.
현대는 자동차와의 전쟁의 시대인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 없는 세상이란 이제 생각할 수도 없다.
산중 생활에 익숙한 필자도 요즘은 자동차 문화에서 비켜설 수 없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인류가 바퀴를 발명한 것은 기원전 3천200년경이다.
오랜 세월 바퀴는 수레로 수레는 자동차 형태로 발전을 거듭했는데, 최초의 자동차가 만들어진 것은 1482년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의한 태엽자동차로 기록돼 있다.
그후 프랑스의 니콜라 조세프 퀴뇨가 3바퀴 증기 자동차를 만들면서 본격적인 자동차시대의 막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동안 자동차는 인간의 발 노릇을 하면서 이제는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으로 자리매김을 해왔다.
몇번의 교통사고 경험을 통해 편리한 만큼의 대가 또한 톡톡히 치러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에 새삼 놀라기도 했다.
불가의 가르침인 인과응보(因果應報)가 어찌 그리도 준엄한지.
동화사는 지난해 여름 백고좌법회를 열면서 교통안전기원당을 조성하고 자비운전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다.
나 또한 여기에 동참하면서 자동차로 인한 재해와 불교의 역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자동차로 인한 각종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불교가 할 일은 없을까. 교통사고 피해자와 희생된 영혼을 위무하기 위해 불교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필자는 우선 인간과 자동차의 인과를 통해 '교통안전'이란 화두를 풀어나갈 불교적 방안에 대해 몇차례 소견을 나눴으면 한다.
동화사 포교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