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교동계 영욕의 역사

입력 2003-01-03 15:3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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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의 파란만장한 40여년 정치 역정을 함께 했던 동교동계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한국정치사는 김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인맥에 대해 김 대통령의 자택 소재지인 서울 마포구 동교동 178의1번지를 따 '동교동계'란 별칭을 붙였고, 동교동계는 3공화국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와 함께 한국 정치의 양대 산맥이었다.

동교동계 1세대는 권노갑.한화갑.김옥두.이용희.남궁진.이윤수 등 60년대부터 함께 해온 인사들을, 2세대는 최재승.윤철상.설훈.배기선.정동채 등 80년대 초반 합류한 인사들을, 3세대는 전갑길.배기운.이협 등 87년 이후 합류한 인사들을 각각 가리키고, 범동교동계로는 한광옥.조재환.박양수.이훈평 의원 등이 있다.

이렇게 형성된 동교동계는 상도동계와 함께 군사독재 시절 정치권내 민주화 세력의 양대 축으로서 역할을 해왔고, 김 대통령이 95년 12월 경기 일산으로 자택을 옮긴 뒤에도 '동교동계'라는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김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동교동계는 직위와 무관하게 자연스럽게 권력의 핵심으로 떠올랐고, 당정을 아우르는 막강한 파워그룹으로 인식되면서 김 대통령의 임기 5년 동안 줄곧 비난과 공격의 초점이 됐다.

김 대통령은 취임후 초반엔 '동교동 가신 멀리하기' 기조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보사태 이후 일본에 건너가 있었던 권노갑 전 의원이 복귀하고, 동교동의 지원을 받는 한광옥씨가 청와대 비서실장에 기용됐다.

이후 정부내 호남 편중인사 논란이 불거졌고, 동교동계 인사가 연루된 각종 비리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시작한 것도 이 때를 전후해서였다.

동교동계는 민주당 내부로부터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정동영 최고위원이 2000년 12월 김 대통령의 면전에서 권 전 의원의 2선후퇴를 공식 거론했다.

2001년 3.26 개각과 4.25 재.보선 패배, 5월 정풍운동 등을 거치면서 동교동계는 끊임없는 개혁의 걸림돌로 지목됐다.

민주당 쇄신파동은 결국 2001년 10.25 재.보선 직후 김대중 대통령의 탈당으로 일단락 됐다.

박상전기자 miky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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