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동교동계'

입력 2003-01-03 14:20:29

김대중 대통령의 파란만장한 40여년 정치 역정을 함께 했던 동교동계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한국정치사는 김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인맥에 대해 김대통령의 자택 소재지인 서울 마포구 동교동 178의1번지를 따 '동교동계'란 별칭을 붙였고, 동교동계는 3공화국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와 함께 한국 정치의 양대 산맥이었다.

동교동계 1세대는 권노갑.한화갑.김옥두.이용희.남궁진.이윤수 등 60년대부터 함께 해온 인사들을, 2세대는 최재승.윤철상.설훈.배기선.정동채 등 80년대 초반 합류한 인사들을, 3세대는 전갑길.배기운.이협 등 87년 이후 합류한 인사들을 각각 가리키고, 범동교동계로는 한광옥.조재환.박양수.이훈평 의원 등이 있다.

이렇게 형성된 동교동계는 상도동계와 함께 군사독재 시절 정치권내 민주화 세력의 양대 축으로서 역할을 해왔고, 김 대통령이 95년 12월 경기 일산으로 자택을 옮긴 뒤에도 '동교동계'라는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김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동교동계는 직위와 무관하게 자연스럽게 권력의 핵심으로 떠올랐고, 당정을 아우르는 막강한 파워그룹으로 인식되면서 김 대통령의 임기 5년 동안 줄곧 비난과 공격의 초점이 됐다.

김 대통령은 취임후 초반엔 '동교동 가신 멀리하기'기조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보사태 이후 일본에 건너가 있었던 권노갑 전 의원이 복귀하고, 동교동의 지원을 받는 한광옥씨가 청와대 비서실장에 기용됐다. 이후 정부내 호남 편중인사 논란이 불거졌고, 동교동계 인사가 연루된 각종 비리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시작한 것도 이 때를 전후해서였다.

동교동계는 민주당 내부로부터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정동영 최고위원이 2000년 12월 김 대통령의 면전에서 권 전 의원의 2선후퇴를 공식 거론했다. 2001년 3·26 개각과 4·25 재·보선 패배, 5월 정풍운동 등을 거치면서 동교동계는 끊임없는 개혁의 걸림돌로 지목됐다. 민주당 쇄신파동은 결국 2001년 10·25 재·보선 직후 김대중 대통령의 탈당으로 일단락 됐다.

박상전기자 mikypark@imaeil.com

◈ 김 대통령, 동교동 해체 지시 의미

김대중 대통령이 『앞으로 동교동계라는 용어의 사용도, 그러한 이름의 모임도 없었으면 좋겠다』며 사실상 동교동계의 해체를 결정한 데에는 여러가지 포석이 깔려 있다.

우선 노무현 당선자의 민주당 개혁작업이 순조롭게 추진되도록 하겠다는 뜻을 읽을 수 있다. 민주당은 대선 승리 이후 인적청산론과 개혁파의 전면배치론을 제기하는 노무현 친위그룹에 대해 동교동계 등 기존 당권파들이 반발하면서 때아닌 내홍을 겪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김 대통령의 동교동계 해체 선언은 민주당내 양대세력중 하나를 무장해제시킴으로써 노무현 당선자에게 힘을 실어주겠다는 것이다. 즉 김 대통령의 직계라는 이미지가 각인된 동교동계가 당 개혁과정에서 집단행동을 하면서 노 당선자 측근들과 세대결을 벌여 당의 정치개혁이 지지부진해질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김 대통령의 이같은 뜻 이면에는 구 정치의 표본으로 지적받고 있는 동교동계와 한 묶음으로 공격받을 가능성의 사전 차단이란 의미도 읽혀진다. 동교동계는 한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한국의 정치지형도를 꾸며왔으나 핵심인사들의 비리 연루의혹과 민주당내 정풍파동을 겪으면서 영향력을 급속히 상실해왔고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결정적인 타격을 받아 정치세력으로 보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김 대통령의 동교동계 해체 결정은 김 대통령으로서는 손해볼 것 없는 계산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다 현실적인 힘도 상실한 계파를 잘라냄으로써 자신을 보호한다는 포석인 셈이다.

결국 김 대통령의 동교동계 해체는 퇴임후 특정계파의 보스가 아닌 국가적 지도자로 남을 수 있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이같은 계산이 맞아떨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노 당선자는 대선 기간중 김대중 정권의 실정과 비리를 심판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또 민주당 신주류들의 기본 인식은 새로운 정치를 위해서는 인적청산론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는 김 대통령의 정치 절연 선언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정권 심판론과 인적청산론이 맞물리면서 언제든지 김대중 정권 정리절차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정경훈기자 jgh031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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