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흙을 빚는 사람들

입력 2003-01-02 11:19:54

얼마 전 문경에 갔다가 젊은 도예가 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팔대 째 도자기를 굽는다는 백산 김정옥 선생의 조카뻘 되는 분이다.

젊은 사람답지 않게 깔끔하게 생긴 외모에 잘 다듬어진 어투는 도자기 굽는 사람의 품위를 그대로 드러내보였다.

겉을 보면 그 사람의 직업이 들여다보인다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전통도자기만을 고수하는 일에 오랫동안 몸담고 살아왔으니 사람마저도 도자기처럼 다듬어진 게 아닐까?

흙이 도자기가 되는 것은 굳이 예술의 경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신비스러운 일이다.

인간문화재인 백산 김정옥 선생은 가마에 불을 지필 때마다 몸을 정갈하게 하고 재를 올린다고 한다.

흙을 빚는 것은 사람의 몫이지만 1300℃의 불길에서 이루어지는 도자기의 요변은 신의 영역이다.

편리하게 가스로 대체하면 될 일을 굳이 소나무 장작을 써야하는 이유는 고르지 않은 장작불의 요변이 이루어놓은 색의 신비스러움 때문이다.

비좁은 전통가마 안에서 바작바작 타들어가며 불순물을 태우고 정화시키는 도자기의 몸부림을 불을 지피는 도공이라도 알 길은 없다.

같은 가마 안에서도 정작 아름다운 완성품이 되어 나오는 도자기는 5%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지옥과 같은 염열을 견디면서 도자기로 태어날 영광의 날을 기도하고 있지만 신이 선택한 도자기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보면 '하느님이 흙을 빚은 다음 입김을 불어넣어 사람이 되게 하셨다'라는 구절이 있다.

도자기만이 아니라 사람 또한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운명이다.

죽어서나마 도자기처럼 뜨거운 염열을 견디며 자신을 정화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승에서 스스로를 정화시키지 못한다면 죽어서라도 견뎌내야 한다는 사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된 생각이다.

흙으로 태어난 인생이기에 한평생 누군가의 입김을 기다리며 변화를 꾀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지?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어도 알맞은 햇볕과 바람과 비를 동반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결실을 맺을 수 없듯이 말이다.

입김이란 어쩌면 사람의 운명과도 같은 것일 게다.

염열을 견디면서도 신의 선택을 기도하는 도자기처럼 우리네 인생도 그렇게 타들어가며 기도하는 것이 아닐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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