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한반도는...-새 정부의 대북과제

입력 2003-01-02 11:19:54

악몽 같은 북한 핵 위기의 재현으로 또다시 냉전의 원점에 서게 된 남북관계를 두고 생각할 때 올해 출범하는 새정부 대북정책 운영의 앞날은 심상치가 않다.

대선기간중 여야 어느 쪽도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론적 수준 이상의 어떤 구체적 해법도 내놓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은 크게 불안해하고 있다.

한마디로 북핵문제의 해결은 새 정부의 첫시험대이며 가장 긴급한 최우선 대북과제가 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문제 해결을 둘러싼 내외의 상황적 여건이 극히 예민한 것은 새 정부의 큰 부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상황의 예민성은 미국의 이 문제에 대한 강경한 태도에서 연유되고 있다.

뜻밖에 북한으로부터 나온 핵개발 자백으로 제네바 합의가 실패를 드러냈을 뿐 아니라 9·11테러사태 이후 대량살상무기의 개발을 곧 테러로 보는 미국의 정책인식 때문에 부시행정부는 핵포기의 선행 없는 어떤 협상제의에도 완강한 거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북핵문제가 긴박한 이상 우리 새 정부의 대통령은 이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 대통령을 누구보다 먼저 만나 북한과의 협상 필요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만남에서 얻을 수 있는 성과는 별로 없을 것이다.

당장 이라크 문제에 몰두하고 있는 부시로서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미공조의 원칙 재확인이라는 외교적 수사의 반복 이외에 한반도의 재앙에 대한 걱정을 덜어줄 수 있는 어떤 실질적 약속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필경 새 한국대통령은 완강한 부시대통령 대신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핵개발 포기를 같은 민족의 입장에서 설득하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오게 될는지 모른다.

북한을 개방으로 끌어내기 위해 평양의 요구를 워싱턴에 전달하고 설득하는데 주력했던 김대중 대통령과는 달리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은 주로 미국의 새로운 정책을 평양에 이해시키고 핵포기를 설득하는 내키지 않는 역할을 떠맡아야 할 공산이 크다.

한가지 여기에서 유의해야할 것은 소위 '악의 축' 국가 중에서도 이라크와는 달리 북한에 대해서는 평화적 해결방법을 찾겠다는 미국의 언급이다.

이 말은 '先 이라크, 後 북한'의 문제해결 순서를 염두에 둔 미국의 복안을 드러낸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지적대로 이라크와 북한은 같은 수순에 따른 조치의 각기 다른 단계에 놓여 있을 따름이고 그 외교적 해결책의 모색은 리처드 펄 국방정책위원장의 표현대로 '無활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미국정부는 북한에 대하여 장차 필요할 경우 군사행동을 포함하는 모든 방안의 실천에 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새 정부는 북미관계가 극한 상황으로 치닫지 않도록 십분 유의하고, 최선의 예방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은 물론이다.

과거 김대중 정부가 북한을 되도록 자극하지 않고 도와주기 위해 미국설득에 주로 애썼듯이 새정부는 북한을 설득해 가면서 미국에 대한 자극을 피해야 할 것이다.

이 강력한 동맹국의 역할을 능동적으로 활용하지 않고서는 한반도 핵재앙을 회피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험없는 '민족 핵' 논리의 함정에 빠지거나 또는 남북간 화해협력의 몇가지 상징적 진전이 한미군사동맹의 기능을 대체할 수 있다고 믿는 안보허위의식의 확산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새정부의 대북과제는 남북화해협력의 실질화이다.

과거의 남북관계 전개는 화해와 대립의 연속적 상쇄(相殺) 과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벅찬 민족적 감격 가운데 극적으로 합의되고 선언된 것이 실질적으로 이행되지 못하고 폐기되는 것이 다반사였고 햇볕정책의 무르익은 화해무드 가운데서도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서해교전이 두차례나 놀라움과 실망을 안겨주었던 사실을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지속적이고도 실질적인 관계개선을 보여주었던 과거의 양독(兩獨)관계와는 대조적으로 남북한간에 있어서는 대화와 접촉이 간헐적인 이벤트였을 뿐 관계개선의 지속적 과정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남북접촉의 화려한 정치적 연출로 외형적 성과를 과시하는 허장성세를 버리고 앞으로는 작은 보폭으로나마 차분하게 실질적 성과를 진전시키고 축적하는 착실성이 대북관계 운영의 새로운 관행으로 정착되어가야 할 것이다.

인도적 사업을 예로 들면 이산가족 재회 문제에 있어서 그때 그때의 힘겨운 합의에 따라 소수 인원의 전시적 재회행사 개최방식을 지양하여 상설면회소 설치운영을 하루빨리 실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끝으로 새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할 또 한가지 과제는 대북포용정책의 개선적 실현이다.

이미 노대통령 당선자는 현정부의 대북포용정책 기조 계승의 의지를 밝혔지만 그 추진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은 상황이 변하고 정부가 바뀐 이상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이 과제는 두가지 문제에 관한 개선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 하나는 대북협상방식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정책추진을 둘러싼 국내적 분위기 조성과 관련된 것이다.

우선 대북협상방식에서 개선되어야 할 문제점은 분명하다.

현정부는 5년전 출범당시 그때까지 경색되어있던 남북관계에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야 할 필요 때문에 어쩔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겠지만 대북협상과정에서 너무도 일방주의적인 관성에 쏠려버렸다.

그래서 때때로 관대한 대북포용에 따른 일방적 지원이 거부적 냉대와 당돌한 도발로 되돌아 오더라도 그 대응처방은 보다 많은 인내와 보다 큰 포용일 수밖에 없었다.

투박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일각의 '퍼주기' 비판도 그런데서 연유된 것인데 문제는 많이 주고 적게 받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실질을 내어주고 알맹이 없는 형식만을 받는 남북거래의 질적 내용 불균형에 있다.

그리고 대북정책 추진의 국내적 분위기와 관련된 문제는 과거에 흔히 지적되어온 국민적 합의 형성의 문제이다.

치열한 이념적 갈등의 와중에서 새정부가 탄생하게 된 사정을 고려한다면 이 문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새 정부는 침착하고 신중한 정책추진을 통하여 대북관계운영을 민족주의적 감성의 정치열기로부터 분리하는 사려와 자제력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김덕 프로필

△1935년 구미 출생

△서울대 법대 졸 미국 인디애나 주립대 대학원 졸

△한국외국어대 정치학 박사

△한국외국어대 교수, 대학원장 역임

△국제정치학회장 역임

△국가안전기획부장, 부총리 겸 통일부 장관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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