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부상 '대구시 행정 개편'-정치적 득실 경계해야

입력 2003-01-02 11:27:18

대구시내의 행정구역 개편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진행돼 온 논의는 △거대해진 달서구의 분구 △왜소해진 중구와 남구 통폐합 △행정구역 조정을 통한 현재의 구세 차 해소 및 현상 유지 등 세 갈래이다.

행정구역 개편은 시민들의 이익과 직결된 것.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구청장들이나 공무원들의 이익을 기준으로 논의될 기미가 짙어져 우려를 사고 있다.

시민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시민의 이익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해진 것이다.

◇왜 지금 조정해야 하나=관련 공무원들에 따르면 대구광역시 출범 때 당초엔 경산을 대구에 편입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했다고 한다.

광역시 출범 7년이 된 현재 상황도 그 주장이 타당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대구에서 활동하는 많은 시민들이 경산을 베드타운화하고 있으며, 경산의 많은 학생들이 대구시내 부정 편입학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 그 때문에 경산에서는 최근 뒤늦게 다시 대구 편입 운동이 벌어지고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행정구역 개편 문제는 시민 이익보다는 주로 정치적인 줄다리기에 의해 좌우돼 왔다고 공무원들은 전했다.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게리맨더링식 선거구 조작을 원했고, 구청장들이나 시의원·구의원이 직선되기 시작한 뒤에는 그들의 선거상 유·불리가 또다른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들어 시민사회로의 진입 가능성이 싹을 보이고 개혁을 요구하는 새 대통령 당선자가 선출됐는가 하면 마침 국회의원선거·지방선거도 상당한 시간을 남겨 놓고 있는 시점에 이른 만큼, 지금이 행정구역 개편의 적기라는 지적이 전문가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대구시조차 조정안 마련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여건도 다급해졌다.

또 시의 재조정안이 제시되자 중구청은 대환영했다.

신개발 지구는 베드타운 기능을 주로 수행하는데 비해 도심구는 주간 활동 인구가 100만~150만명에 이르러 이들과 관련된 쓰레기·교통·공원 관리 등에 많은 투자가 필요하나 인구 감소로 세수가 적어 대응이 어려웠다는 것. 정재원 중구청장은 "도심구에서는 시간외 수당, 연가 보상, 성과급, 출장여비 등 공무원 처우도 열악해 행정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엉거주춤한 대구시=그러나 몇개 동을 뺏기게 된 구청들의 반발은 거셌다.

황대현 달서구청장은 "차라리 중구·남구를 통폐합하라"고 역공했다.

황 구청장은 "동사무소를 포함한 공무원 정원이 달서구는 863명인데 비해 중남구 합계는 1천197명에 달한다.

동사무소(달서 289명, 중남구 274명)를 빼면 통합한 중남구는 구청·보건소·의회사무국 인력을 350명이나 줄여 연간 110억여원의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황 구청장은 또 "성당동·송현동을 남구로 넘겨 주라고 하지만 두 동은 세출이 세입을 9억원이나 초과해 시 안대로 하면 오히려 남구 재정이 더 열악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달서구청은 대신 분구하겠다며 이미 성서 이곡동에 새 구청 부지까지 지정해 두고 있다.

이렇게 반발이 크자 대구시는 행정구역 조정은 첨예한 이해 관계가 뒤따르는 문제여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당분간은 인구 수에 맞게 구청 직제를 정비한 후 주민 의사를 존중해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한 해 갚아야 할 빚이 5천억원이나 되는 주제에 당장 1천200억원 가까운 돈이 들고 앞으로도 매년 엄청난 행정 경비를 쏟아 부어야 할 구청을 또 만드느냐"는 비난을 들을까봐 두려워 하는 것. 그러면서도 내심으로는 현재 U대회 조직위에 파견돼 있는 공무원들을 대회 후 복귀시키기 위해서는 달서구를 둘로 나눠 구청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공무원 중심주의적인 생각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해녕 시장은 작년 지방선거 때 "중남구 통합은 안되고 수성구 일부의 동구 편입도 부적절하며 달서구 일부 서구·남구 편입은 분구 문제와 맞물려 있어 효율성을 따져야 한다"는 복잡한 입장을 보인 바 있다.

행정자치부 역시 전국적인 문제가 뒤따라 국가적 부담이 커진다며 분구는 허용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특별시는 인구 70만명, 광역시는 50만명을 넘으면 분구 대상이 되는 것으로 분류하고 있으나 예산상 이유때문에 보류할 수밖에 없다는 것. 행자부는 대신 행정구역 개편을 유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시각=영남대 지역개발학과 윤대식 교수는 "도시 전체를 놓고 판단해야지 달서구 하나를 놓고 분구 문제만 거론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했다.

윤 교수는 또 대구 전체의 중심인 중구는 도로·주차·노점상 관리 등 행정 수요가 엄청난데도 야간 숙박 인구가 적다는 단순한 잣대만으로 다른 구와 비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했다.

계명대 최봉기 교수는 "청사를 또 만들어야 하고 공무원을 증원해야 하는 등 행정비용이 엄청나 구청을 또 더 만드는 것은 단기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대구 전체 인구가 크게 느는 것이 아니고 단지 이 곳에서 저 곳으로 옮겨 가는 것일 뿐인데도 구청을 추가로 만들어서는 시민 부담만 커진다는 것. 최 교수는 "이대로 가면 대구는 수성구·달서구만 발전하는 기형적인 도시구조가 되고 만다"고 강조했다.

대구경실련 조광현 사무처장은 "행정구역 개편 논의가 도시 균형발전 및 시민편익보다는 구청장들의 정치적 이해 득실에 더 치중돼 진행되는 감이 든다"며, "지방자치의 근본 목적인 주민 복리 증진에 역점을 두고 사심 없고 신중하게 추진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행정구역 변경, 어떤 절차 밟아야 하나=분구는 정치권과 중앙정부 차원의 결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지방자치단체 설치'에 해당하는 분구는 국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 법률 사항이다.

더욱이 행정자치부는 분구 유보를 방침으로 하고 있고, 대구시로서도 당장에 1천200억원이나 되는 경비를 확보하기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행정구역 개편은 국무회의 의결로 이뤄질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러려면 먼저 주민편익, 생활권 일치 여부, 지세·교통 등 지리 여건, 문화·풍속·생업·주민화합 등 역사성, 행·재정적 효과 등을 종합 분석해 조정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어 구의회 의견 수렴, 시의회 의견 수렴, 행자부 건의, 조정안 및 법령안 마련, 법제처 심의, 국무회의 상정·의결, 대통령 재가 및 대통령령 공포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러나 행정구역 조정 역시 관련 구청·구의회 동의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최정암기자 jeong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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