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개바-문화도시를 위한 이야기

입력 2003-01-02 11:28:55

지난해 말 우연찮게 하루에 두 번의 망년회에 참여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모임으로 굳이 의미를 찾는다면 몇몇의 문화계 인사들을 만날 수 있었던 자리였다.

인원이 다소 많아 급기야는 끼리끼리 목청을 높이며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기자로서는 귀를 솔깃하게 하는 한두 가지 이야기가 오고 갔다.

첫번째는 대구를 문화도시로 만들기 위한 시민연대를 창설하겠다는 한 분의 이야기였다.

올해로 14년째 대구에서 지역 문화운동에 힘써 온 이 분의 논지는 '한 도시가 건강한 문화도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거리 곳곳에서 많은 공연이 이뤄져야하고, 이를 위해 뜻 있는 독지가나 문화계 인사를 망라해 보다 조직적이고 비전을 제시하는 모임 결성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말은 다소 거창해 보이지만 담겨 있는 내용은 소박했다.

원하는 곳이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나 공연을 할 수 있는 팀이 필요한데 혼자서는 힘이 드니까(?) 뜻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함께 해보자는 것이다.

재정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면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여러 사람이 함께 하면 신바람나는 문화운동을 벌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두번째는 대구의 한 구청에서 '공연기획단'을 만들어 공원이나 거리, 한옥, 주민자치센터 등에서 '찾아가는 음악회'와 '거리 음악회'를 개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구청의 공식기구는 아니지만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협조를 얻어 각종 공연을 기획하고, 나아가 대구시내 각 구청과 연대해 여러 곳에서 행사를 할 수 있도록 꾸려 나가겠다는 것이다.

공연 때마다 팀을 구성, 각 구(區)를 순회하는 방법을 택하면 각 구청에서 비용을 조금씩 쪼개 분담하면 돼 효율성을 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개인, 한 행정기관의 이러한 생각은 조그만 부분이긴 하지만 그 도시의 문화코드를 읽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사실 지난해 대구에서는 수많은 공연이 공식적인 공연장이 아닌 아파트와 화랑, 문화관, 카페, 병원 등지에서 열렸다.

매달 한 번씩 '동네 음악회'를 갖고 있는 곳도 많으며 몇몇 곳은 올해부터 정기적으로 공연을 가질 예정이기도 하다.

물론 이 시도가 서로 연계되지 않는 독자적인 행사들이어서 지역 문화계 전체 분위기를 바꾸기는 힘들다.

그러나 나의 집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각종 공연이 열리고, 이를 즐기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분명 최근 들어 '문화생활'에 대한 개념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어 자연스럽게 '시민연대' '문화기획단' 구성의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최근 대구의 문화풍토가 바람직한 모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도 엿볼 수 있다.

기자는 개인적으로 올해를 '문화도시 대구' 원년으로 만들 수 있는 중요한 해라고 판단하고 있다.

오페라 하우스가 개관돼 문예회관과 시민회관-야외음악당을 잇는 공연장 인프라 사업이 제 모습을 갖추게 되고, 이에 맞춰 대구시는 대구를 대표할 만한 문화행사 개최를 위해 오페라 축제를 계획하고 있다.

또 전년도에 비해 대구시의 재정이 줄었음에도 문화관련 예산은 오히려 늘어나는 등 행정쪽의 분위기도 좋은 편이다.

유명 공연이나 전시회가 대구를 피해가고 대형공연을 할 만한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퇴근 길에, 저녁 식사뒤에 잠깐 아이들 손잡고 나와서 들를 수 있는 작은 동네문화공간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이 그 지역, 그 도시의 문화척도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때 공연·전시장이나 도서관·박물관·영화관의 숫자를 헤아리지 않고도 '대구=문화도시'라는 이미지를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정지화기자 jjhw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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