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심사평

입력 2003-01-01 19:00:47

문학은 시대를 앞서가는 정신의 소산이다.

우리가 신춘문예에서 기성문단을 흔드는 정서적 충격을 기대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런 가운데 '푸른 곰팡이'.'남문산역에서'.'못물을 보며'.'어항 속의 바다' 같은 작품들을 만나면 흐린 안경알을 닦지 않을 수 없다.

저마다 개성적인 시각으로 다양한 경험의 세계를 녹여낸 작품들을 앞에 놓고 전체를 한눈에 다잡아 읽기도 하고, 개별 작품끼리 맞씨름을 붙여 보기도 했다.

윤채영씨의 '못물을 보며'는 미묘한 정서의 흐름을 안정된 호흡으로 풀어내고 있으나, 신인다운 패기가 부족한게 흠이다.

'어항 속의 바다'를 쓴 이우식씨의 경우는 선이 굵고 새로움에 대한 의욕이 넘치는 반면, 관념적 어휘에 이미지의 반전 효과가 희석된 느낌이다.

김경미씨는 '푸른 곰팡이'를 통해 강한 자의식과 점액질의 서정성을 보여준다.

자연스러운 가락의 운용을 체현한다면 한층 깊고 푸른 인식의 세계에 가 닿을 것으로 본다.

고심 끝에 손영희씨의 '남문산역에서'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이 작품은 시상의 전개가 역동적이면서도 도입부의 신선한 감동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또한 그것이 완강한 어둠을 밀치는 힘과 치열한 정신의 깊이를 동반하고 있다.

외면할 수 없는 분단 현실 속에서 눈부신 자성과 생존의 의미를 일깨워 가는 것이다 . 어디든 미답의 세계는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시조의 새로운 길을 열어 가기를 당부한다.

박기섭(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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