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美談 '남이의 새해 희망'

입력 2003-01-01 19:22:59

남이(8)에겐 2003년이 두번 태어나는 해이다. 오는 3월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할 것이라고 꿈에 부풀었다. 빨간 구두에 꽃무늬 원피스를 인형처럼 차려 입고 나설 3월은 그렇게도 그리던 봄날이다.

남이는 뇌성마비 장애아. 게다가 버려진 아이. 두 다리가 꽈배기처럼 꼬였다. 서는 것은 커녕 양반다리 하고 앉는 것도 꿈꿀 수 없었다. 남이가 사는 집은 대구 만촌동 '룸비니동산'이다. 다른 일곱 명의 더 심한 아이들이 형제자매들. 이 가정은 국가의 지원을 마다하고 많은 사람들의 헌신적인 사랑과 후원으로 꾸려지고 있다.

이런 남이에게 인연은 "햇볕처럼" 그렇게 다가섰다.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장성호(39) 교수. 남이와 그 형제들의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장 교수는 지난해 봄 남이의 집을 찾아갔다. 자신의 전문성으로 재활시킬 수 있는 아이들이 있을지 살펴봐야겠다는 것. 여덟명 아이들을 일일이 살펴 본 장 교수는 남이를 치료하자고 제안했다. "부모를 잘 만났더라면 충분히 걸을 수 있게 할 수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곳곳에서 진단 한번 받아보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날부터 남이의 '걸음마'가 시작됐다. 장 교수는 먼저 다리 경직을 풀어 줄 약물 치료를 시도했다. 꼬였던 다리가 부드러워졌다. 거들어 주면 앉을 수도 있게 됐다. "특수의자에 앉혀 생활케 해야 상태가 좋아진다"며 장 교수는 전문가를 보내 고가의 장비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한단계 더 들어간 치료를 시도해야겠다며 같은 병원 소아재활 전문의 이지인 교수에게 부탁했다. 새로운 치료는 주말마다 정성껏 진행됐다. 상태가 더 호전됐다. 그러나 걷는 데까지 이르기에는 한계가 있음이 드러났다.

아예 수술을 해 보면 어떨까? 장 교수는 또한번 욕심을 더 부렸다. 이번에는 사정을 얘기 들은 신경외과 김성호 교수가 특진비를 받지 않고 집도를 맡겠다고 나섰다. 그것이 지난 12월16일. 수술대에 누운 남이도 잘 참았다. 동맥을 찌르는 주사에도 아프단 말 한마디 없었다. 치마를 입고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이 어린 남이로 하여금 수술 공포까지 잊게 한 것이었다.

일차 수술 성공. 남이를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이 병실로 달려갔다. 한 공무원은 장난감을 사 들고 갔고, 맛있는 것 사 먹으라고 현금을 챙겨간 아저씨도 있었다. 고등학생 봉사자들은 남이를 얼러 주겠다고 찾아 들었다. 23일엔 두 번째 수술도 성공리에 끝났다. 드디어 꼬였던 다리가 완전히 풀어진 것은 물론, 뻐덩뻐덩했던 다리를 구부릴 수 있게까지 됐다. 물리치료와 걷기 연습을 열심히 하면 걸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장 교수 자신은 남이를 위해 한 일이 별로 없다고 말을 잘랐다. 기자의 사진 취재도 며칠을 거부했다. 하지만 남이에게 그는 그냥 '좋은 의사'이기만 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장 교수는 치료가 자신의 손을 떠난 이후에도 '끈'을 놓지 않았고, 의사 체면을 뒤로하고 원무 관계자들에게 어쨌든 도움되도록 해 달라고 부탁하고 다녔다. 대가를 바라기는 커녕 오히려 뒷바라지에 보태라며 보호자에게 두 번씩이나 자신의 월급을 털어줬다.

"장 선생님은 진정한 사랑을 품고 사시는 분입니다. 사소한 일까지 걱정해 챙기십니다. 성탄절에는 남이에게 예쁜 인형을 선물해 주기도 했습니다. 장 선생님은 의사이기 이전에 사랑의 실천자입니다. 2003년은 남이가 다시 태어나는 해가 될 것입니다". 그 자신도 헌신적인 봉사자로 룸비니동산 여덟 아이를 키우는 김금옥(50)씨는 '사랑'이란 단어를 거듭거듭 얘기했다. 남이는 며칠 후 퇴원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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