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문화인물-(5)연극인 김은환

입력 2002-12-28 13:50:15

직업을 '생계를 잇는 행위'라고 정의한다면, 배우를 직업으로 분류하는데 잠시 망설여지지 않을 수 없다. 화려한 영화배우나 탤런트도 아니요, 연극배우라면 좀더 길게 망설여진다. 1년 가까이 곁에서 지켜본 연극배우들은 꿈을 먹고 사는 업(業)에 종사하는 이들이 아닌가 싶다. 무대에 서는 포만감을 잊지 못하는.

24일 밤 극단 원각사 25주년 기념공연 '사랑은 기적을 싣고'를 마치고 연극배우 김은환(35)씨를 만났다. 그는 대구 연극계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중인 30대 연기자 가운데 한 명이고, 극단에 소속되지 않은 몇 안되는 '프리랜서 배우'다.

올해 '마술가게' '한여름밤의 꿈' '돼지사냥' '코카서스 백묵원' '날 보러와요' '꽃마차는 달려간다' '사랑은 기적을 싣고'등 7개 작품에 주·조연급으로 출연했고, 달구벌 축제공연 '살짝이 옵서예'에서 조연출을 맡았다. 한 작품당 한 달반가량 연습기간이 걸린다니 일년내내 연극하다 보낸 셈이다.

지난 1996년 2월 교회의 성극(聖劇) 연출을 배우러 대구의 모 극단을 찾았다 우연히 캐스팅 됐으니 경력 7년째다. 무대가 좋아 직장을 그만두고, 98년 대경대 연극영화과에서 연기수업까지 받았다. 체격, 발성면에서 좋은 조건을 갖췄지만 그는 자신의 배역과 연기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다.

"연출자들이 말쑥하고 멋있게 보이는 역만 맡기시는 거예요. 제 연기의 딱딱한 면이 가장 큰 단점인데, 이걸 뭉개버릴만한 배역을 한 번 맡아보는게 소원이었죠".

그래서일까. 그는 올해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품으로 지난 10월말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공연한 '꽃마차는 달려간다'를 꼽았다.과년한 딸에 대한 속깊은 정을 가졌으면서도 겉으로는 괴팍한 70대 노인 '순보'역이었다.

극중에서 딸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과 결혼한다고 했을때 너무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왔다고 했다. 대본에 없는 연기였지만, 솔직한 몰입의 결과였다. '자연스런 연기란 인위적인 기교와 계산이 절정에 달했을 때 나온다'(드니 디드로 '배우에 관한 역설(中)고 한다. 그는 어떤 노력을 했을까.

"대본을 받아들고 제 머릿속 순보를 찾아 공원으로 나갔죠. '기차화통'같은 노인이라 경로당에는 없을 것 같았거든요. 비슷한 이미지의 할아버지를 만나 막걸리 두 통 사드리고 옆에서 내내 관찰하고 사진까지 찍었죠. 화낼 때 손짓이나 목소리 톤은 어떤가, 걸음걸이는 어떤가 하고…. 순보는 제 인생을 사로잡은 인물이에요".

김은환씨는 인터넷 연극관객 모임인 '연극사랑 사람사랑 대구모임'을 지난 2000년 6월 개설, 연극 대중화에도 관심을 돌렸다. 현 회원수만 1천여명. 문화분야에선 보기 드문 대규모 자발적 모임이다.

"초등학교 3학년때 아버지와 같이 연극을 본 경험을 잊을 수 없었죠. 나와 같은 사람들이 또 있지 않을까. 함께 연극을 보고 감상을 나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구요". 무소속 배우인 그에게 대구연극계는 어떻게 비칠까.

"일단 극단이 살아야 배우가 살죠. 배우가 무대에 서고 싶어도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다면 정말 서글픈 일이잖아요. 극단끼리의 교류도 활발했으면 하구요. 또 '왜 관객이 연극에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가', '요즘 관객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분석자료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비평가그룹과 연극인들간의 교류가 활성화되면 이런 문제도 많이 해결되겠죠".

그는 올들어 영천에 있는 육군3사관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연기이론·실습 출강중이다. 군 조직의 딱딱함 생활속에서도 감정을 표출해내고 자기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었으면하고 바람을 나타냈다.

"스폰지처럼 말랑말랑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배우요?…. 신들린 사람 아닐까요. 옛날 하늘에 제를 올리는 제사장이 현대적인 배우의 시조쯤 될 것 같은데, 너무 거창한가? 하하".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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