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눈물 그리고 우승 되돌아본 21년-(18)허구연의 실패

입력 2002-12-26 15:40:00

85년 통합우승을 차지한 삼성은 86년 시즌을 기대 속에 맞았다. 삼성의 전력은 여전히 최강으로 평가받았다. 이 해에 제7구단 빙그레가 시즌에 참여했다. 85년 제7구단으로 승인받은 빙그레는 충청도를 연고지로 한 팀으로 사령탑에 배성서 감독을 앉히고 의욕적으로 출발했다.

선수가 부족했던 빙그레는 삼성의 김성갑, 박 찬, 김한근, 성낙수, 황병일, 롯데의 이석규, 천창호, 김재열, 이광길, 해태의 유승안과 김종윤, 청보의 장명부를 받아들여 팀을 꾸렸다.

이 중 김성갑, 김한근, 황병일, 유승안 등이 주전으로 뛰었으나 부상으로 인해 팀 기여도가 그리 높지 않았던 반면 85년 삼성이 연고권을 포기한 이강돈이 빙그레에 입단, 주전 중견수로 공·수에 걸쳐 맹활약했다. 기대를 모았던 장명부는 노쇠하고 지친 탓인지 15연패에 빠지는 등 시즌 1승18패로 몰락, 이 해에 4년간의 고국 생활을 끝내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청보는 85년 시즌 인천 야구의 대부 김진영 감독이 39승1무70패로 최하위에 그친 뒤 물러나고 해설가 허구연을 감독으로 맞아 86년 시즌에 대비했다.

한일은행에서 선수로 뛰었으나 코치 경험이 없었던 허 감독은 당시 35세로 사령탑에 취임, 야구계 안팎의 시선을 모았다. 허 감독은 강태정, 한동화, 유남호, 김명성, 김무관 등 중량감있는 코치진의 보좌를 받으며 실전에 나섰다.

그러나 학구적 이론가였던 허 감독은 구단과 잦은 갈등을 일으키며 코칭 스탭과의 결속력도 삐걱거리는 시행착오 속에 약한 팀 전력을 극복하지 못하고 전기리그 8승23패의 참담한 성적에 머물렀다. 강태정 코치에게 감독대행을 맡기고 단기 일본 연수를 다녀온 허 감독은 후기리그 감독직에 복귀했으나 최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8월6일 신생팀 빙그레에 0대10으로 대패한 뒤 전격적으로 물러났다. 사상 최연소 감독이었던 허 감독은 15승2무40패(승률2할7푼3리)의 성적을 남기고 짧은 프로 감독 경력을 끝냈다. 그는 "나는 암초를 보지 못한 서툰 선장이었다"는 말을 남기고 야인으로 돌아갔다.

86년 시즌에는 전·후기리그의 2위팀까지 한국시리즈에 도전할 수 있는 5전3선승제의 플레이오프 제도가 도입되는 등 변화가 생겼다. 85년 시즌 삼성이 전·후기리그에서 모두 우승, 한국시리즈가 무산되자 프로야구 진흥을 위해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취지가 담겨 있었다.

이 해에는 뛰어난 신인들, 특히 투수들이 가세, 프로야구판을 더 알차게 만들고 있었다. 대구상고 출신의 타자 이강돈이 빙그레 입단 당시 별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맹활약을 예고하고 있었고 삼성의 좌완 성 준, MBC의 김건우, OB의 박노준, 빙그레의 이상군, 한희민,해태의 김정수, 차동철 등이 프로 마운드에서 바람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고교야구 마지막 황금기의 주역들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김지석기자 jise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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