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림 홍씨 일가들-세속의 벼슬보다 학문으로 명망쌓아

입력 2002-12-26 14:01:00

팔공산 한티재를 넘어 제2 석굴암을 지나 동산계곡 삼거리에서 아래로 내려오면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전통마을을 만나게 된다.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고려 중엽 재상을 지낸 홍란(洪鸞)이 남양지방에서 부림으로 옮겨온 뒤 부림 홍문(缶林洪門)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온 곳.

현재 300여세대 7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이 마을의 원래 이름은 대야(大夜). 그러나 밤 야(夜)자가 좋지않다 하여 '夜'자를 '율(栗)'자로 고친후 사람들은 대율(大栗)의 순우리말인 '한밤'으로 부른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때문에 이곳에 처음 온 이방인들 중엔 '한밤'이라는 마을 이름으로 보아 큰 밤나무가 많을 것으로 지레 짐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주위엔 사과나무.감나무밖에 없어 그들을 의아하게 만들기도 한다.

마을 정면엔 한티준령, 서쪽은 매봉과 질매재가 병풍처럼 둘러쳤고 북쪽의 금성산과 조림산이 먼발치로 보이는 이곳은 마치 세상과 겹겹이 담을 쌓은 듯 고요한 분지마을이다. 마을 전체가 선형(船形)이라 '배에 구멍이 뚫리면 수해가 난다'하여 이 마을에선 함부로 우물을 파지 않았다.

홍갑근(57) 이장은 "73년전인 1929년, 대홍수로 마을사람 68명이 목숨을 잃어 해마다 기일이 되면 마을 전체가 제수음식을 준비하느라 진풍경이 벌어졌다"고 했다.

동네를 수호하던 천연고목이 썩어 쓰러진 후 60년(1갑자)마다 대홍수가 닥치자 주민들은 재앙을 막기 위해 그자리에 3m 높이의 오리솟대(진동단.鎭洞檀)를 세웠다. 물위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 오리의 형상을 바위 끝에 조각해 배의 균형을 잡으라는 의미.

주민들은 매년 음력 정월 초닷새날 이곳에서 동제를 지낸다. 동제는 반별로 돌아가며 하는데 하자가 없는 사람 3, 4명으로 유사를 정해 3일전부터 대문에 금줄을 쳐서 몸과 마음을 정결케하며 제사 당일 반드시 냉수로 목욕후 제사를 지내고 있다.

홍연욱(90).홍이근(84)씨 등 마을 어른들은 "지난 여름, 팔공산 자락에 큰 산사태가 발생했으나 마을 주민들의 정성이 헛되지 않아 재앙을 막을 수 있었다"고 했다.

마을은 수백년간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전통가옥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녹색 이끼로 뒤덮인 나지막한 돌담길은 '여기가 제주도인가' 싶을 정도다.

마을 한가운데엔 널찍하고 시원스런 대청이 있다. 조선 초기 서당이던 이 대청(경북도 유형문화재 262호)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누각형으로 임진왜란때 소실돼 지난 1632년(인조9년)에 중창돼 여름엔 마을 노인들의 경로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바로 옆에는 250여년전 의흥현 최고의 건물이었던 입향조 노(魯)의 10세손 홍우태의 살림집이었던 상매댁(上梅宅.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357호)이 잘 보존돼 있다.마을의 집들 중 얼핏 일반 가정집과 구별되지 않는 작은 절 대율사에는 높이 2.65m의 불상이 둥근 대좌를 딛고 서있다.

우아한 얼굴에 아담한 눈과 입을 지닌 이 불상은 옷주름이나 직립한 긴 하체 등 다소 경직된 듯 하지만 전체적으로 세련되고 당당한 면모가 신라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석불 입상(보물988호)으로 마을의 자랑거리다.

마을 초입의 길 양쪽에는 200~300년은 됨직한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마을 분위기를 더욱 고풍스레 만들어 준다.

숲 중간에는 홍천뢰(洪天賚) 장군과 효자 홍영섭을 기리는 비석 2기가 서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대장이었던 홍 장군은 의병을 모아 이곳에서 훈련시켜 왜적을 물리쳤다 한다.

홍 장군의 활약상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 1973년. 당시 대율초교 장세천 교장이 후손들이 보관해 오던 고서적을 통해 홍장군의 활약상을 알게됐고, 친하게 지내던 고 이성근(당시 영남대 총장)박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 총장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이를 알렸고, 박 대통령이 친필 비문을 보내오면서 비석을 세웠다는 것.

이곳 출신 홍종흠(61.대구문화예술회관장)씨는 "대구권을 중심으로 원형이 잘 보존된 전통마을은 한밤마을 뿐"이라고 역설했고, 군위군청 남재걸(36) 새마을과장은 "한밤마을은 전통미나 규모면에서 안동 하회마을과 비교도 안될 만큼 우수하지만 전통마을로 지정받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지난 92년 경북도가 한밤을 전통마을로 지정키 위해 수차례 주민공청회를 열었으나 일부 주민들은 "사유재산권 침해와 개발제한에 따른 불편이 예상된다"며 반발해 전통마을 지정이 무산됐다.

이때문에 현재 마을에는 전통고가들 속에 군데군데 콘크리트집들이 뒤섞여 있다. 주민 홍안세(63)씨는 "옛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켜야 함에도 이것을 파헤치고 썩혀버리는 현실이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정창구기자 jc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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