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이웃사랑 나눠요

입력 2002-12-26 14:06:00

"미술치료라는 것이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서 잠재된 내면의 마음을 함께 나누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2년 동안 매달 1, 2회 봉화요양원을 찾아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위해 미술치료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이순희(41.여)씨. 대구에서 태어나 계명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후 지난 87년 결혼해 봉화에서 살고 있다. 가정주부로, 두 아들의 학부모로, 홍가네 식당을 하고 있는 그녀도 40대 접어들면서 자신을 되돌아 보는 기회를 갖고자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2000년 초 평소 성당을 다니면서 알고 지내던 봉화요양원 정희자(45) 원장으로부터 '노인들에게 미술지도를 해 주면 노인들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으니 해 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한번 해 보겠노라 생각했지요".

그녀가 처음 봉화요양원을 찾아 60명의 노인들 중 그림을 그리고 싶은 30여명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했다. "단체생활에서 오는 것인지 대부분 군청색이나 남색 등 어두운 색깔을 사용하더군요. 색깔은 물론 선,형태 등도 일반인들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꼴라쥬를 한 결과, 70대 한 할머니는 도화지 밖을 응시하는 신랑의 모습을 오려 붙였고, 또다른 할머니는 복조리를 오려 붙였다. 이 노인들과 꼴라쥬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20대 청상과부가 된 처지와 바람을 읽을 수 있다. 어떤 노인은 그림을 이야기 하면서 울기도 한다. 자연스런 감정이입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녀는 노인들을 위해 미술치료를 체계적으로 배워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2000년 6월부터 1주일에 한번 꼴로 봉화에서 버스를 타고 대구에 있는 가톨릭미술치료연구소(소장 정여주)까지 가 2여년 동안 초급.중급.심화반을 이수했다. 요즘도 소모임(샘)을 구성해 직접 작업을 하면서 미술치료에 관한 의견을 교환한다."미술치료라는 것이 잠재된 것을 끌어내는 작업이죠. 그림 그리는 행위를 통해 치료도 중요하지만 그림을 읽어주고 함께 이야기 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치료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 나름의 미술치료론이다.

"사실 70, 80대 노인들에게 고유색깔 개념이 없어요. 난화는 팔근육 강화에 도움이 되고, 꼴라쥬를 하면서 노인들의 성적 호기심이 잘 나타난다"고 말했다. 2년동안 미술을 하면서 노인들이 사용하는 색깔도 밝은 노란색 사용이 많은 등 변화가 나타난다고 했다.

언제부터인가 이곳 노인들은 이씨와 함께 그림 그리는 것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좋아 그녀가 기다려진다고 했다. 작년 10월 입소한 홍정순(83)할머니는 "보통학교때 그림을 그려보고 그동안 못그려 보았다. 그림을 그리면 기분전환도 되고 소질을 나타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정희자 원장은 "미처 파악하지 못한 노인들의 고민이나 부끄러운 이야기들도 이씨의 미술치료를 통해 알게 되는 경우도 많다. 노인들의 표정이 그림그리기 전보다 많이 밝아졌다"고 말했다.

그녀는 미술치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곳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말 벗이 되어준다. 인간적 교감이 그 어느 치료보다 낫다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그녀는 자신이 직접 펜으로 쓰고 그림을 그려 만든 시를 코팅해 봉화군청 등 공공화장실에 달아 놓았다. "나의 작은 수고로움으로 인해 시 한편을 읽는 순간 잠시라도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행복을 느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 일을 했다. 의외로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노인들이 원하는 한 계속해서 봉사를 하고 싶다"는 그녀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여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화실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며 싱끗 웃었다.

봉화.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최신 기사